에너지 절감 건축설계 전문가 이명주 교수
이명주 교수는 명지대 건축대학 교수로, 이 대학 제로에너지 건축센터장으로, 자신이 설립한 ㈜제드엠제이건축사사무소 대표로 1인 3역을 소화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올 2월 세종대에서 기후변화정책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윤영호 전문기자
대학원 졸업 후 미국 유학을 가려고 유학원 간판을 보고 무심코 들어간 사무실이 독일유학원임을 깨닫고 바로 나왔을 때만 해도 그는 깨닫지 못했다. 독일 유학생과 결혼해 함께 독일로 유학을 떠나면서는 어렴풋이나마 느꼈다. 그러다 그를 가혹하게 시험하는 심술을 부릴 때에야 그 존재를 실감했다. 그럼에도 그가 좌절하지 않자 끝내 그에게 미소를 보냈다.
서울 노원구 하계동 하계역 인근 1만1344m² 터에 국내 최초로 들어서는 에너지제로주택(EZ House·이지하우스)단지의 홍보관에서 21일 만난 명지대 건축대학 이명주 교수(50)는 운명이란 단어를 자주 거론했다. 건설 판에 어울리지 않는 커트머리의 앳된 얼굴이 인상적인 그는 이 단지 설계를 지휘한 주인공. 그가 단지를 소개하려고 등산화를 신고 나설 때에야 비로소 그 포스를 느낄 수 있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노원구청, 명지대가 2013년부터 시작한 이 단지엔 아파트, 연립주택, 땅콩주택, 2층 단독주택 등 공공 임대주택 121가구가 들어선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이산화탄소 감축은 시대적 과제가 됐는데 주택 분야에서 화석연료를 쓰지 않고도 쾌적하게 살 수 있는 첫 대규모 단지를 노원구에 조성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명주 교수는 운명이 항상 자기편이라고 믿는다. 그는 1993년 생각지도 않게 떠난 독일 유학 생활 중 외환위기 여파로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관광 가이드 등 닥치는 대로 일하다 현지 설계사무소에 취업했다. 그러다 외국 건축사 자격증 소지자를 우대하는 실무형 교수 제도가 국내에 도입되면서 그 경력에 힘입어 2003년 모교 교수가 됐다.
그뿐이 아니었다. 연구실에 갇힌 교수 생활에 답답함을 느낀 데다 제자들에게 실무 경험을 전수하려면 실제 설계 작업을 많이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무렵 실험실 창업이 활성화됐다. 2009년 6월 디자인 분야에서 첫 번째로 창업했다. 제자 한 명과 함께 서울 서초구 지인의 사무실 한쪽에서 설립한 ㈜제드엠제이건축사사무소다.
“가끔은 베를린공대 건축학 박사과정을 계속 다녔다면 학위를 딸 수 있었을까, 또 박사가 됐다고 해도 교수로 부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후에도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스스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패시브 설계란 외단열, 고성능 창호, 기밀(氣密·공기 밀폐) 성능 강화, 열교(熱橋·열이 빠져 나가는 부위) 차단 등을 통해 5대 에너지 소요량을 줄이는 것을 말한다. 독일 헤센주에서 환경장관을 지냈고, 나중에 연방 정부 외무장관을 지낸 요시카 피셔의 주도로 1990년 독일에서 처음 패시브 건물을 지은 이후 유럽에 널리 퍼졌다.
그가 처음 설계한 패시브 하우스는 2005년 완공한 경기 파주출판단지 인근 ‘3.8리터 하우스’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 이 개념이 알려지지 않은 데다 주택 이름도 특이해 건축 관련 잡지가 이 주택을 많이 소개했다. 이는 1m²당 연간 3.8L의 석유나 가스로 실내 난방을 할 수 있는 주택으로, 당시 건축법상 에너지 절약 만족 주택(12.3L)보다 에너지를 훨씬 덜 쓴다.
그의 이름을 알린 작품은 서울 노원구 중랑천환경센터였다. 그는 이 센터를 태양광을 통한 에너지 제로 시스템으로 설계했다. 단순히 에너지를 덜 쓰는 패시브 개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화석연료가 생산하는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 건물로 완성한 것. 물의 순환 과정 및 중랑천 생태계를 교육하는 이 센터는 이후 전국 환경센터의 모델이 됐다.
이지하우스는 그동안 그의 경험과 노하우를 한데 모아 국내 최고의 패시브 기술을 적용한 작품이다. 그가 여기에 국내 최초로 적용한 외단열재는 여름철 열대야도 방지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현재 대부분의 공동 주택은 콘크리트 벽 안쪽에 붙이는 내단열 방식을 쓴다. 이 때문에 콘크리트가 한낮에 열을 머금었다가 밤이 되면 방출하면서 열대야 현상이 나타난다.
“그동안 공공 주택은 물량 공급에 급급했고, 민간 분양 아파트는 투자 수단으로 바라본 탓인지 주택에서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었다. 이제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보는 만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건물 하드웨어에도 투자를 해야 할 때다.”
그는 주거 환경도 사람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아파트 단지의 앞마당을 자동차가 차지하고, 사람은 자동차를 피해 다녀야 하는 지금 같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모든 차량은 지하로만 다니게 하고 앞마당엔 주민이 만나 소통할 수 있는 녹지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개척자에겐 항상 고난이 따르는 법인가. 이 교수도 처음엔 이단아 취급을 받았다. 귀국 이후 건축 관련 심의위원으로 참여해 당시 유행하던 유리 건물의 에너지 소비 문제를 지적할 때는 ‘별 이상한 소리 다 한다’는 건축주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나중엔 건축주들이 ‘이명주 교수가 출석하지 않는 날 심의를 받게 해 달라’고 하소연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디자인 분야 창업 1호 교수라는 영광도 한순간이었다. 처음 창업했을 때만 해도 학생들에게 산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도 있었다. 여기에 자신이 직접 설계해 완공한 건물이 에너지를 얼마나 절약하는지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두 가지 목표는 그런대로 달성했지만 그 과정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창업 첫해 매출은 고작 2300만 원. 2015년에야 겨우 연매출 10억 원을 돌파했다. 그동안 직원은 22명으로 늘어났다. 자신의 보증으로 은행 대출을 받아 직원 월급을 주는 일도 잦다. 마이너스 인생을 사는 셈이다. 지난달엔 거래 은행 직원으로부터 “수지가 맞지 않는 이런 회사를 언제까지 계속할 것이냐”는 걱정도 들었다.
무엇보다 큰 어려움은 건축주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패시브 하우스 개념이 덜 알려진 탓인지 국내에서는 이에 맞는 건축 자재를 찾기도 쉽지 않은 데다 설사 그런 자재가 있다고 해도 이를 실제 사용하려면 수많은 설명이 필요했다. 특히 건축주가 공공기관인 경우엔 번거로운 절차와 서류 작업을 통해 그 자재를 꼭 써야 하는 이유를 납득시켜야 했다.
그가 건축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3학년 무렵 여성 건축사 1호 지순 간삼건축 상임고문이 출연한 TV 프로그램을 우연히 봤을 때였다. “여성 건축사로서 힘든 일이 많았다”는 지 고문의 얘기는 이상하게 그의 뇌리에 남았다. 그가 87년 명지대 건축학과를 선택한 것도 그때의 기억 때문이었다.
대학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 말기인 탓에 공부보다는 시위에 더 열심이었다. 그러다 4학년을 앞두고 문득 ‘졸업 후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고, 건축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로 했다. 이후 홍익대 대학원 건축학과에 진학한 그는 졸업 후 미국 대학으로 유학을 가고 싶었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독일로 이끌었다.
그의 단기 목표는 패시브 하우스 건축비를 낮추는 것이다. 패시브 하우스가 부자들 전유물이 돼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패시브 하우스 건축이 일반화돼 관련 자재 수요가 늘어야 한다. 그가 이지하우스 시공 과정에 가능한 한 국산 자재를 사용하고 국산이 없는 자재의 경우 국내 업체에 개발을 독촉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의 또 다른 도전 과제는 에너지제로 도시 건설이다. 이는 건물 하나하나가 모두 에너지 효율이 높아야 할 뿐 아니라 이런 건물이 서로 연결이 돼야 가능하다. 그는 “지구 표면의 2%에 불과한 도시가 탄소 배출의 80%를 차지하는 상황에 제로에너지 도시를 만들지 않으면 기후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욕심이 많아서일까. 창업 이후 한번도 휴가를 가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밤늦게 집에 들어가면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부터 켠다. 최근 친정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고향인 광주에서 딸 집으로 올라온 어머니가 그걸 보다 못해 “이제 제발 그만 좀 하라”고 걱정할 정도다. 어머니는 그의 건강을 염려해 하는 얘기겠지만 그게 그의 운명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듯하다.
▼이지하우스는…▼
태양광-지열로 냉난방 급탕 조명 에너지 조달하고도 남아
실물 크기로 만든 실험 주택선 에너지 66%-전기료 86% 줄여
서울 노원구 하계동 에너지제로주택 단지 전경. 121채대 중 115채를 공공 임대주택으로 분양하는 7월의 첫 입주자 모집에서는 4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나머지 6채는 연구용 등으로 사용한다. KCC건설 제공
출발은 이명박 정권 말기 국토교통부와 환경부 관료의 의기투합이었다. “저탄소 녹색성장이 정권의 핵심 과제인 만큼 우리도 영국 런던의 베드제드, 독일 프라이부르크 주거단지와 같은 세계적인 환경도시를 조성해볼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환경부의 제안에 국토부가 흔쾌히 응한 것. 정부 과제로 공식 공고가 나간 것은 박근혜 정권 때인 2013년이었다.
이 교수는 이후 최근까지 이곳에서 갖가지 실험을 했다. 각종 자재를 종류별로 다 써 본 다음 실제 성능이 나오는지 검증해보고 자재들 간에는 어떻게 연동되는지 측정해봤다. 이 교수는 “그 결과를 페이스북에 실시간으로 공개하면서 홍보에 도움이 됐을 뿐 아니라 관련 공무원과 시공사 등과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난해 7월 한 달 동안 목업 주택에서 하루 24시간 내내 에어컨을 틀어 실내 온도를 25도로 유지시켜 놓았을 때의 결과도 보여줬다. 에너지 233kWh를 사용해 전기료 5만 원이 들었다고 한다. 정부 통계상으로는 같은 크기의 2층 단독주택에서 같은 조건을 유지하는 데 에너지 700kWh에 전기요금 36만4000원이 들어간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목업 주택에서 실증적으로 확인한 기술과 자재를 이지하우스에 그대로 적용했다. 이 교수의 예측대로라면 이지하우스는 패시브 기술과 열 회수형 환기장치(열은 그대로 보존한 채 공기만 순환시킴), 열 교환기 등 고효율 설비 기술을 통해 같은 규모의 주택 단지(2015년 기준)보다 74.2%가량 절감한 32만2378kWh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여기에다 이지하우스는 태양광 발전 설비로 연간 40만7503kWh의 전기를 생산한다.
결국 냉난방, 급탕, 조명, 환기에 필요한 에너지를 모두 충족하고도 오히려 8만5125kWh의 에너지가 남게 되는 셈이다. 남는 에너지는 각 가구에 보내 가전 에너지 등으로 사용하게 할 예정이다. 이 교수는 “물론 현재로서는 어디까지나 예측 값이기 때문에 100% 정확한 결과라고는 할 수 없지만 세계 최고의 기술을 적용했다고 자부한다”면서 “실제 주민들이 입주한 이후 나온 빅데이터 값을 분석한 결과를 늦어도 내년 말엔 국제적으로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영호 전문기자 yyou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