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영화사 시선
때를 놓쳐 보지 못하던 ‘베이비 드라이버’를 보러 토요일 낮 서울 마포구의 한 멀티플렉스를 찾았다. 번호표를 뽑아 기다리다 순서가 돼 티켓부스로 가니, 앞에 7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노부부가 한참 지나간 번호표를 갖고 서 있었다. 급할 게 없던 터라 먼저 하시라고 말하고 그 뒤에 섰다. 자연히 노부부를 ‘관찰’하게 됐다. 은근히 ‘저 분들은 주말 낮에 무슨 영화를 볼까’ 궁금하기도 했다.
발권 직원에게 할아버지는 “뭐가 재밌느냐” 물었다.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직원은 “‘아이 캔 스피크’가 예매율 1위”라고 했다. 사실 극장에 가보면 볼 영화를 미리 정하지 않고 직원에 재밌는 영화를 물어보는 중장년 관객이 의외로 많다. 이를 위한 참고용인지, 발권 테이블 안쪽에는 예매율 목록을 적은 메모가 붙어있다.
낯선 영어 제목 탓인지 노부부는 “무슨 내용이냐” 물었다. “위안부 이야기에요.” 직원이 답했다. 노부부는 당기지 않는 듯 다음으로 예매율이 높은 영화를 물었다.
그들의 대화가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위안부 이야기”대신 “할머니가 영어 배우는 이야기”라고 조금 다르게 설명했다면 어땠을까. 사실 영화 주인공인 나문희가 과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다는 내용은 시사회가 열리기 전까지 ‘스포일러’였다. 물론 영화는 이미 개봉했고 ‘검색하면 다 나오는’ 정보이니, 그 직원의 설명이 잘못됐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 극장에 오는 관객은 의외로 많다. 결정적 스포일러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