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략폭격기 B-1B 2대가 23일 밤 북한 쪽 동해 국제공역까지 날아가 무력시위를 벌였다.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B-1B는 괌 미군기지에서 날아와 오키나와 주일미군 소속 F-15C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며 동해 북방한계선(NLL) 연장선 북쪽 공해상 깊숙이 날았다. B-1B는 원산 동쪽 350여 km 공해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미군 폭격기와 전투기의 NLL 이북 출격 작전이 공개된 것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미국의 B-1B 무력시위는 북한의 어떤 위협도 단호히 응징할 군사옵션이 있다는 의지를 과시한 것이다. NLL은 6·25전쟁 정전 직후 유엔군사령부가 남북 간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설정한 해상경계선이다. 유엔군사령관을 겸한 미군은 그동안 남북 간 충돌을 낳을 NLL 침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스스로도 NLL 월경을 극도로 자제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 미군 항공기, 그것도 막강 화력을 장착한 전략폭격기 편대를 NLL 이북으로 올려 보냄으로써 북한에 초고강도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미국 국방부 대변인도 자세한 작전 내용 공개는 삼갔지만 “21세기 들어 미국 전투기나 폭격기 중 가장 북쪽으로 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작전에 우리 공군이 참여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다. 통상 B-1B 출격은 우리 공군 F-15K 전투기가 미군 전투기와 함께 호위에 참여하는 방식의 한미 연합작전으로 이뤄졌다. 미군 전력만으로 이뤄진 독자적 작전은 처음이라고 한다. 우리 군은 B-1B 출격 사실을 사전에 통보받았고 상황을 공유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미가 사전에 얼마나 긴밀히 조율했는지는 의문이다.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때 우리 군은 미군 폭격기가 휴전선 인근까지 접근하지 못하도록 요구한 적도 있다. 전격적으로 이뤄진 이번 작전은 사태 악화를 가장 우려하는 우리 정부에 던지는 메시지도 있어 보인다.
북-미 간 거친 말 폭탄 전쟁은 이제 자칫하면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돼가는 분위기다. 긴장이 팽팽할수록 사소한 오판이 큰 재앙을 낳을 수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완성이 가까워질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북한은 자신들의 최종 목표가 “미국과 힘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지구상 최빈국에 속하는 북한이 핵미사일 몇 개로 슈퍼파워 미국에 맞서겠다는 것은 헛된 망상이다. 이런 망상에서 북한이 또 다른 오판을 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한 “북한 완전 파괴”는 결국 현실이 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자신의 머리를 겨눈 총의 방아쇠에 엮인 줄을 가지고 위험한 장난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