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의 한반도]美, 동해상 NLL 넘어 무력시위
주말 한밤중 한반도를 들썩이게 만든 B-1B 2대는 전날(23일) 오후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한 괌 앤더슨 기지 활주로에서 굉음을 내며 출격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슷한 시간 일본 오키나와(沖繩) 가데나(嘉手納) 미군기지에서는 전투기 F-15C 6대가 출격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 역대 최대 규모의 공중 전력 투입
주한미군 소식통은 “B-1B가 대북 무력시위나 지형 숙지 훈련을 목적으로 한반도에 전개된 역사상 가장 많은 미군 공중 전력이 투입됐다”고 전했다. 미군이 장기 작전을 염두에 둔 공중급유기를 비롯해 ‘탐색구조전력’(전투기 피습 시 적진에 침투해 아군 조종사를 구조하는 부대원 및 헬기 등 특수전력)까지 동원한 건 북한의 맞도발로 인한 실제 전쟁 상황까지 감안한 조치로 풀이된다. 군 소식통은 “이 정도 규모면 미군이 단독으로 대북 타격을 하려 한 것으로 봐도 될 정도”라고 말했다.
B-1B 편대가 한반도를 빠져나간 직후인 24일 오전 2시경 미 국방부는 전례 없이 신속하게 성명을 발표했다. “북한의 무모한 행동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강조하고자 21세기 들어 북한 해상으로 날아간 미군 전투기와 폭격기를 통틀어 비무장지대(DMZ) 이북 최북단까지 비행했다”는 것이다.
○ 북, 코앞 전개에도 군사적 대응 못해
미군이 스텔스기 등을 이용한 비공개 작전으로 NLL을 넘어 북한 공해상까지 출격한 적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공개한 건 처음이다. 북한 김정은이 21일 자신 명의의 성명을 통해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 조치 단행을 심중히 고려할 것”이라고 협박하자 전략폭격기 편대를 북측 공해까지 북상시켜 최후통첩성 경고장을 보낸 셈이다. 도발하면 공해가 아니라 영해, 영공까지 들어가 세계 최강의 전력으로 응징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미 국방부는 특히 북한 리용호 외무상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시작하기 약 1시간 전에 B-1B가 NLL을 넘은 사실을 전격 공개하며 무력시위 효과를 극대화했다. 그러나 리 외무상은 이날 연설에서도 “미국의 무고한 생명들이 화를 입는다면 전적으로 트럼프 책임”이라며 안보 불안을 고조시키는 말폭탄을 쏟아냈다. 정부 소식통은 “리 외무상은 초고강도 무력시위에도 말폭탄을 쏟아냈지만 북한은 코앞에서 벌어진 미군 공중 전력의 작전에도 별다른 군사적 대응을 못했다”고 했다.
미군이 이례적으로 한반도에서 독자 공중전력만으로 대북 군사작전에 나선 것을 두고도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미군은 그동안 한반도에 B-1B를 전개할 때 한국군 F-15K 등의 호위를 받는 등 한국군 전력과 연합 작전을 해왔다. 군 관계자는 “B-1B는 공개든 비공개든 한 달에도 여러 번 한반도에 오지만 한국군 가운데 사전에 인지한 인원이 이번처럼 극소수였던 적은 없었다”며 “비행 경로가 예전과 많이 달라 고도의 작전 보안이 필요했던 만큼 미군 전력만으로 진행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이를 두고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독자 군사행동에 시동을 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북한이 ‘역대급 수소탄 시험’을 언급하며 군사적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상황에서도 대북 인도적 지원 결정 등의 유화책을 완전히 거두지 않은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이 한반도 독자 작전으로 나타났다는 것. 이에 군 당국은 “혹시 모를 북한과의 충돌에 대비해 우리 공군 전투기 발진을 준비하는 등 B-1B 전개를 전후해 한미가 관련 상황을 철저히 공유하며 대비태세를 갖췄다”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