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극인 산업부장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는 1970년 호호 불어 먹는 ‘호빵’을 내놓았던 삼립식품이 전신이다. 황해도 옹진군 출신으로 고향에서 작은 빵집을 운영하던 허창성 창업자가 광복 이후 1959년 서울 용산에 삼립제과공사를 설립했다. 미국제빵학교에 유학한 창업자 차남 허영인 회장이 19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내놓은 브랜드가 파리크라상(1986년)과 파리바게뜨(1988년)다. 빵은 서양 음식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이름에서부터 해외로 진출하겠다는 각오를 담았다.
꿈을 이루며 박수 받던 파리바게뜨가 국내에서 오명을 뒤집어쓰게 생겼다. 본사가 가맹점에서 일하는 제빵기사를 불법 파견했다고 고용노동부가 지난주 시정명령을 내렸다. 논란은 몇 달 전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거론하면서 시작됐다. 지난달에는 민주노총이 제빵기사들을 조합원으로 한 파리바게뜨 지회를 구성했다. 진영 논리가 가세하면서 논란이 첨예화하고 있다.
가맹점주가 제빵기사 인건비로 협력사에 월 340만 원을 내는데 기사들은 240만 원밖에 못 받는다는 주장은 악의적이기까지 하다. 기사들은 한 달 30일 중 24일 근무한다. 하루 일당이 10만 원인 셈이다. 나머지 6일은 협력사가 대체인력을 보내는데 340만 원에는 이들의 임금이 포함돼 있다. 제빵기사들의 4대 보험료와 협력사 운영비, 마진도 포함해야 한다.
현재 파리바게뜨 본사 직원 수는 5200명이다. 제빵기사 수는 5378명. 배보다 배꼽이 큰데, 이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본사가 고용하면 매년 600억 원이 더 든다. 한 해 영업이익을 홀라당 까먹는 규모로 직원을 뺏기는 협력사도 망하지만 본사도 망한다. 협력사 정규직인 제빵기사들을 본사가 비정규직으로라도 채용하라는 주장도 황당할 뿐이다.
파리바게뜨는 당초 상생 차원에서 본사와 협력사, 가맹점 등 3자가 합작회사를 설립해 제빵기사를 채용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자 고용부는 갑자기 회사 설립과 관련해 제빵기사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고 했다. 민주노총의 경영 참여를 보장하라는 요구와 다를 바 없다는 게 재계 시각이다.
파리바게뜨가 고용부 명령을 거부하면 530억 원의 과태료를 물고 사법 처리된다. 이에 법적 대응을 검토했지만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관군(官軍)에 맞서 좋을 게 없다는 재계 상식 때문이다.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 요즘 한국 기업들이 처한 상황이다.
배극인 산업부장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