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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단녀들 창업 고민? 경험 믿고 일단 질러보세요”

입력 | 2017-09-26 03:00:00

[청년사장 전통시장 진출기]<10> 구미 선산봉황시장 ‘마미키친’ 강향미 대표




음식 솜씨 좋고 마음씨는 더 좋은 ‘청년 사장’ 강향미 마미키친 대표가 직접 만든 수제도시락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청년몰에 함께 입점한 사진전문점 후 스튜디오의 신후정 대표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후 스튜디오 제공

“조심히 오세요, 호호호. 맛있는 밥 해드릴게요!”

20일 서울역에서 출발한 고속철도(KTX)는 1시간 20여 분을 달려 경북 김천구미역에 멈춰 섰다. 정확한 가게 위치를 물어보려고 전화를 걸자 이내 생기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따끈한 밥을 차려주겠다는 얘기에, 점심때가 지난 터라 저절로 시장기가 동했다.

택시를 타고 30분쯤 가니 구미 선산봉황시장이 나타났다. 장날이 아니어서인지 시장 안은 한산한 편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전통시장이다. 선산봉황시장은 청년 상인들의 제안으로 6월 이마트 자체브랜드(PB)인 ‘노브랜드’ 전문매장이 입점했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새로운 ‘상생협력’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시장 입구 상가 2층 한편에 자리 잡은 수제도시락 가게, 그곳에서 강향미 마미키친 대표(43)가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테이블이 5개뿐인 소박한 식당이다. 소녀 감수성이 풍기는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와 소품, 알록달록한 수제도시락 사진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늦은 점심을 마친 테이블 손님이 나간 뒤에야 강 대표는 겨우 기자와 마주앉았다. 자신을 고등학생 중학생 아들 둘을 둔 평범한 엄마라고 소개했다. 강 대표는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시작한 일인데 어찌어찌 입소문을 타면서 창업까지 하게 됐다”며 웃었다.

강 대표는 결혼 19년차 주부다. 손재주가 좋아 결혼하고 나서 5년간 십자수 가게를 운영했다고 한다. 활달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 덕에 십자수 가게를 접은 뒤 화장품 영업에 뛰어들었다. 업무 때문에 서울을 오가던 어느 날 강 대표의 눈에 띈 것은 수제도시락집들. 강 대표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이랬다.

‘앗! 이거다.’ 구미에도 수제도시락 수요가 있을 것이란 직감이 왔다고 한다.

곧바로 도시락 가게를 연 것은 아니었다. 음식 솜씨가 좋은 주변 친구들에게 도시락 가게 창업을 권했지만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집 주방에서 재미 삼아 수제 도시락을 만들기 시작했다. 주먹밥에 눈, 코, 입을 붙여 만들고 과일도 예쁘게 깎아 도시락을 꾸몄다. 예쁘게 만든 도시락은 혼자 보기 아까워 인터넷 블로그에도 올렸다.

‘입소문’의 힘은 놀라웠다. 블로그를 보고 ‘쪽지’를 보내 아이들 소풍에 가져갈 도시락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회의 때 먹을 단체 도시락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도 잘 안 나오는 블로그를 어떻게 알고 찾아오나 했더니, 이게 다 입소문을 타고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신기했어요.”

괜찮은 반응들이 이어지자 강 대표는 창업을 결심했다. 서울과 대전 등의 수제도시락가게를 찾아가 강의도 들으면서 차근차근 창업을 준비했다. 때마침 선산봉황시장 청년몰에 저렴한 임차료로 장기간 가게를 쓸 수 있게 되는 행운까지 따랐다.

창업 초기 가게를 알리기 위해 아파트 단지를 돌며 샌드위치 도시락을 저렴하게 팔았다. 강 대표는 “아무리 일해도 힘들지 않을 때였다”며 웃었다.

창업한 지 반년이 채 안 됐지만 수제도시락을 만들며 우여곡절도 많았다.

도시락을 만들 때 무조건 보기 좋고 예쁘게 만들겠다는 의욕이 앞서면서 낭패를 본 게 기억에 남는다. 수제도시락을 주문한 학부모에게서 ‘항의성’ 전화를 받은 것이다. 소풍을 간 아이들이 신이 나 도시락 가방을 ‘쥐불놀이하듯’ 휙휙 돌리며 뛰는 바람에 도시락이 비빔밥처럼 범벅이 돼 버렸다는 사연이었다. 강 대표는 “예쁘고 맛있게 만드는 것만 생각했었는데 그 전화를 받고 도시락 케이스를 바꾸고, 아이들이 흔들어도 잘 섞이지 않게 담는 법을 연구했다”고 했다.

강 대표의 성공 비결은 도시락에 엄마의 정성을 담는 것이다. 수제 소스로 만든 닭봉과 베이컨말이는 한입에 쏙 들어가고 맛도 좋아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도시락 반찬이다. 마미키친의 대표 메뉴다. 강 대표는 초창기 도시락을 주문량보다 하나씩 더 만들었다. 고객이 실제로 먹는 시간에 직접 먹어보기 위해서였다. 혹시 시간이 지나면서 맛이 변하진 않았는지, 상하지는 않을지 철저히 점검했다.

수제도시락인 만큼 고객이 원하는 가격대와 원하는 메뉴는 어지간하면 맞춰준다는 것이 마미키친의 운영 철학이다. 강 대표는 “시골이라서 어르신들이 5000원짜리 수제도시락도 깎아달라고 한다. 그러면 ‘입소문 많이 내달라’고 깎아줄 때도 있다”며 미소 지었다.

가게를 운영하지만 마미키친의 1순위는 테이블 손님이 아닌 사전 주문 도시락이다. 주문이 많을 때는 가게 앞에 ‘○○시까지는 도시락을 만듭니다’란 푯말을 세우고 영업을 잠시 중단한다. 강 대표는 “테이블 손님을 받는 것이 가게 매출에는 더 도움이 된다. 하지만 마미키친의 정체성은 수제도시락이니까 창의적인 도시락을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매장 손님들에게는 나시고랭 볶음밥, 옛날도시락, 참깨드레싱 소고기밥 등의 메뉴를 5000원 안팎에 판다. 단체주문이 몰리면서 하루 150만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 적도 있다. 지금은 매일 만드는 도시락 양을 정해서 그 이상은 팔지 않기로 했다. 강 대표는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도시락 주문을 받은 적도 있지만 질이 떨어지고 내 맘 같지 않았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주문을 받자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창업을 고민하는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조언을 해달라고 하자 ‘일단 저질러 보라’는 말이 되돌아왔다. “창업할 때 주변에서 ‘가게를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어쩌냐’란 걱정이 많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주부로서, 또 다른 직업을 경험하면서 숱한 경험을 축적해왔더라. 경험에 경험이 쌓여서 지금 성과를 이룬 것”이라고 강조했다.

“망하면 어떡해?”라는 질문에는 “망하면 어때? 젊으니까 다른 일 찾아야지!”라고 답하겠다는 강 대표. 그는 음식에는 요리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고스란히 담긴다는 철학이 굳건하다.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는 나쁜 기운이 담길까봐 아예 도시락 싸는 일을 멈추고 마음부터 다스린다고도 했다. 도시락에 담긴 엄마의 마음이란 게 이런 것이리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이정욱 소상공인진흥公 실장 “어린이 요리교실 열어 단골 만들고… SNS통해 다양한 고객 확보 장점” ▼


“젊은 부부들을 공략한 전략이 잘 맞아떨어졌네요.”

21일 경북 구미 선산봉황시장을 방문한 이정욱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상권육성실장(50·사진)은 ‘마미키친’의 전략을 높이 샀다. 중장년층이 아닌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창업을 시작했다는 점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이 실장은 “시장 인근에 노년층만 거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미공단으로 출퇴근하는 젊은 부부가 의외로 많다. 정작 이들이 이용할 만한 서비스는 주변에 별로 없다”고 말했다.

단순히 도시락을 파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려는 시도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강향미 대표는 올해 초 아동요리지도사와 요리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도시락 만드는 요리수업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의 심리상담 프로그램도 열어 고객 충성도를 높이는 효과도 가져왔다. 이 실장은 “강 대표의 성공 비결은 고객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전문성, 그리고 주변과 조화를 이뤄 더불어 살아간다는 상생 정신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인터넷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다양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으로 학교, 기업체, 웨딩촬영용, 생일파티 등 다양한 고객층을 끌어들이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아쉬운 점은 가게 간판. 이 실장은 “전체적으로 인테리어가 모던하고 독특하긴 한데, 보편성을 상실해 한계가 보인다”고 했다. 선산봉황시장 청년몰은 가게마다 간판을 따로 두지 않아 처음 방문한 고객들이 점포를 찾기 어려울 때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실장은 “디자인은 미적인 요소 외에 기능도 매우 중요하다. 간판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마미키친만의 문제가 아니라 선산봉황시장 청년몰 전체에 공통된 문제”라고 했다. 그는 이어 “지금 갖춰진 디자인 콘셉트를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세심하게 개선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민지 기자 jm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