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최근 ‘사이언스 시그널링’은 RNA 편집으로 폐암의 전이 가능성을 낮추는 연구를 소개했다. 암이란 원래 정상 세포였던 것이 증식을 멈추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동안 암 연구 대부분에서는 RNA 편집 패턴들이 조절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서 RNA 편집의 특정 효소(ADAR)가 폐샘암 진행의 촉진자 역할을 한다는 걸 알아냈다. RNA 편집 효소인 ADAR는 이중나선 RNA를 묶거나 분자의 아미노 그룹을 제거하여 아데노신을 이노신으로 바꾼다.
연구진은 폐샘암 1기 환자 802명의 샘플을 채취했다. 폐샘암은 폐암 중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체액 분비의 역할을 하는 세포에서 암세포가 발생해 ‘샘암(腺癌)’이라고 불린다. 연구 결과, RNA 편집에 관여하는 ADAR가 암세포의 이주를 촉진시키는 것으로 파악됐다. 암세포 덩어리 중 일부가 떨어져 나와 다른 곳으로 전이되는 현상을 추적한 것이다. 이로써 암세포의 분화, 이동 및 침입을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우리 몸의 세포는 약 10조∼60조 개이고, 세포 하나에 91cm가량의 DNA가 세포 핵 내에 있다. DNA를 엄청난 정보의 양을 가지고 있는 도서관이라고 간주하면 유전자는 도서관 안에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유전자는 단백질을 만드는 방법이 저장된 정보이다. 사람 DNA는 보통 2만5000개에서 4만 개 정도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단백질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신체의 모양과 기능 등이 달라진다. 여기서 중간 역할을 하는 게 RNA다. 유전자를 이용해 우리 몸의 구성물인 단백질을 만든다. 첫 단계는 DNA가 복사, 편집해 RNA를 만드는 것이다. DNA 자신은 핵에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대타 RNA를 내세운다. 복사된 RNA는 핵 바깥으로 나가기 전 편집이 일어난다. RNA 편집은 RNA의 무의미한 부분(인트론)이 제거되고 유의미한 부분(엑손)끼리 연결되는 과정이다.
역설적이지만 세포는 끊임없이 분열하고 증식해야 생명이 유지될 수 있다. 세포가 주변으로 움직이거나, 세포에서 세포 혹은 세포와 주변과 접착이 적절히 작동해야 한다. 하지만 너무 과하거나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몸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조로증, 혈우병, 색맹, 다운증후군 등 다수의 질병이 유전자 이상으로 발생한다. 그동안 RNA 편집 기술은 정신병이나 뇌전증, 희귀 근육병 등의 치료를 위해 연구돼 왔다. 이번 연구 결과로 암세포 전이에까지 적용될 수 있다면 암환자들에겐 분명 희소식이다.
그런데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유전체 편집은 RNA 편집과는 차원이 다르다. DNA 역시 특정 염기서열을 인지해 자르는 데 효소를 이용하긴 하지만 그 후 다시 붙이고 삽입하는 과정이 따라온다. 최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RNA 편집 기술도 개발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RNA 편집은 원래 몸 안에서 일어나는 자연적 과정이다. 특히 RNA는 DNA에서 전달받은 유전자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여 단백질을 만들지 않고 때론 변형하기도 한다. 일정 정도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정보는 정보 자체만으론 소용이 없으며 연결되고 변형되어야 의미가 있다. DNA의 유전자 정보를 복사, 편집해 우리 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게 RNA이다. 이 RNA가 어떻게 편집되고 무엇에 의해 정보를 전달하느냐에 따라 종양이 진행되거나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DNA에 박힌 유전자 정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정보들이 편집되고 활용되는 게 더욱 중요한지 모른다. 도서관에 있는 수많은 책과 책 속에 담긴 정보들이 그 자체만으론 의미가 없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