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2030 세상/최지훈]What is the ‘선진국’?

입력 | 2017-09-27 03:00:00


최지훈 호호스프 대표

“처음엔 몰랐는데, 살다 보니 선진국이 뭔지 알겠어.”

뜬금없는 선진국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말을 꺼낸 후배는 외국으로 이민 가 자리 잡은 지 5년이 넘었다. 그는 스스로 선진국에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가 느낀 선진국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선진국이 무엇일까. 그게 뭐길래 그가 느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우리가 수십 년째 쫓고 있을까.

어렸던 나에게 선진국이란 비싼 장난감으로 상징되곤 했다. ‘천사들의 합창’에 나오는 아동용 자동차나 ‘나홀로 집에’ 시리즈에 나오는 신기한 장난감들이 문득 떠오른다. 사실 교과서에도 선진국을 대부분 경제력과 연관해 설명하고 있었으니 얼추 맞는 직관이었다. 그 장난감들이 이젠 주위에 넘쳐 난다. 어릴 적 TV 속 세상에 밀리지 않는 경제적 풍족함을 누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를 선진국이라 부르지 않는다. 선진국이 도망가고 있거나, 우리가 겸손하거나, 둘 다이거나다.

선진국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다른 나라보다 정치, 경제, 문화 따위의 발달이 앞선 나라’라고 나와 있다. 알 듯 모를 듯한 개념이다. 어떤 정치가 앞선 정치인지, 혹은 어떤 경제제도가 앞선 경제제도인지 기준은 무엇일까. 혹여 좋은 제도를 마련했다 하더라도 국가마다 적용되는 형태가 달라짐을 생각하면 더욱 모호해진다. 애초에 나라와 나라 사이에 ‘앞서다’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 있는지도 궁금하다.

일본에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찻길에서 스쿠터를 타고 있던 아저씨가 대뜸 시동을 끄고 내리더니 스쿠터를 손으로 밀고 와 내 옆에 서는 것이 아닌가.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신기해하던 중 신호가 바뀌었고 그는 나와 나란히 걸어서 도로를 건넜다. 그리고 반대편 인도를 지나 골목길에 닿으니 그제야 올라타 시동을 켜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일본의 준법정신에 대해 많이 듣긴 했지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라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다. 인도 위를 힘차게 달리는 오토바이를 피할 때면 종종 생각나는 장면이다.

마침 후배 녀석이 부르짖는 선진국 자격의 1순위도 교통 문화였다. 심지어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도 사람이 있으면 차가 선다는 이야기. ‘양보는 미덕’을 넘어서 의무처럼 지키는 사람들. 사람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는 운전 습관 등 말리지 않으면 하루를 꽉 채워 떠들 기세였다. 이어서 직업으로 사람을 깔보는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점. 시민 개개인이 본인의 의견을 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점. 소위 말하는 내숭 문화의 부재. 식당의 음식이 늦게 나와도 쉽게 화내지 않는 분위기 등 본인이 느낀 선진국을 마음껏 들려주었다.

‘선진국’의 이미지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어릴 때 보았던 환상의 세계는 사라지고 착한 사람들의 세상이 됐다. 과거 화려하고 풍족한 모습이 선진국의 이미지였다면,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며 개개인이 당당한 사회의 모습이 지금의 선진국이 가진 이미지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없는 것을 선진국에서 찾고 있었다. 과거에도 지금도 선진국이란 우리의 결핍된 부분을 비추는 관념적 대상이었을까. 대화가 길어질수록 ‘선진국’은 특정 국가가 아닌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뜻하는 듯했다. 우린 선진국을 좇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쫓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결핍을 안다. 부족한 부분을 안다는 것은 공부가 거의 끝나 감을 의미한다. 배고플 때 배고픔을 알아 극복했듯이, 지금의 결핍도 극복되리라 믿는다. 화룡점정. 떨리는 손 부여잡고 점만 찍으면 된다.
 
최지훈 호호스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