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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창덕]노동 정책도 밀당이 필요하다

입력 | 2017-09-27 03:00:00


김창덕 산업부 차장

독일은 대부분의 업종에서 파견이 허용된다. 파견제를 적극 활용하게 된 것은 2003년부터다. 가장 성공적인 노동개혁으로 꼽히는 하르츠 개혁 때 ‘같은 기업에 2년 이상 파견할 수 없다’는 파견 기간 제한을 없앴다. 그 대신 정부는 파견 회사, 즉 파견 근로자들이 소속된 기업을 철저히 관리 감독했다. 파견 근로자들이 원청회사에서 해고되면 일정 기간 내 반드시 다른 직장을 찾아주도록 하는 식이었다.

독일도 정규직과 파견근로자 간 임금 격차라는 부작용은 피해 가지 못했다. 이 때문에 독일 연방노동부는 2015년 파견근로 기간을 18개월로 다시 제한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이 법안은 사용자, 근로자, 정치권의 치열한 논의를 거쳐 지난해 다소 완화된 형태로 통과됐다. 18개월 기간 제한은 노사 합의를 통해 24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다면 독일의 파견제는 과연 실패한 정책일까.

아니다. 독일 기업들은 이 제도로 경영환경에 따라 탄력적으로 인력정책을 펼 수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이 대표적이다. 그해 독일의 산업생산성이 전년보다 5%나 줄었다. 그럼에도 전체 실업률은 7.7%로 2008년 7.5%와 비슷했다. 인력 구조조정이 크지 않았고 해고된 근로자도 파견제로 새 일자리를 찾았던 덕분이다. 독일 파견 회사와 새로 계약을 맺는 인력의 3분의 2가 실업 상태였다는 통계도 있다.

2년 전 만난 독일상공회의소(DIHK) 슈테판 하르데거 박사는 “독일이 금융위기 직후 노동시장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유연한 인력 수급 구조” 때문이라고 했다. 독일 내 파견 인력은 2003년 33만 명에서 2015년 96만 명까지 늘어났다. 전체 근로자의 3%를 조금 넘는다. 요약하면 독일은 파견제도를 경제 위기 극복에 요긴하게 활용했다. 부작용이 나타나자 즉각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제도를 개선했다. ‘파견은 악’이라고 못 박아둔 한국과는 다른 접근법이다. 국내에서는 경비, 청소 등 32개 업종에서만 파견이 허용된다.

고용노동부가 파리바게뜨에 제빵기사 5378명을 직접 고용하라고 명령한 것을 산업계가 무겁게 받아들이는 것도 노동 경직성을 강화하는 조치여서다. 이성기 고용부 차관은 “이번 감독 결과로 프랜차이즈 산업이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는 지나치다”고 했다. 하지만 많은 기업은 “미리 대책을 만들지 않으면 파리바게뜨처럼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정부는 시범 케이스를 통해 공포심을 심어주기보다 현실과 동떨어진 법부터 손을 보는 게 할 일이다. 파견법도 테이블 위에 올려보자. 파견 가능 업종을 확대하더라도 기업들이 악용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면 된다.

세계적으로 높은 정규직 보호 수준도 생각해볼 문제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25일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요건 완화’의 2대 지침을 공식 폐기했다. 노조의 박수를 받겠지만 숙련자들을 대책 없이 내보내는 어리석은 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성과자’ 기준만 명확히 해두면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들이 피해를 볼 이유는 없다. 정부는 양대 노총을 달래는 데 급급하다. 근로자 과반수 동의를 조건으로 했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은 한국 대기업 노조의 힘이 비대해진 결정적 원인 중 하나다.

26일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출범했다. 정부는 미래의 나라 곳간을 책임질 새로운 산업을 찾겠다고 한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가 많이 생겨날 게 분명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이분법에 매몰돼 있다가는 이 소중한 일자리를 정부가 모두 ‘불법’이라고 규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노동정책도 밀고 당기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기업도, 근로자도 산다.
 
김창덕 산업부 차장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