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발점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건이었다. 당시, 미국 유학 중이던 그는 중국 군대가 평화로운 시위를 하는 젊은이들을 학살하는 것을 보고 ‘그러한 나라를 위해서는 더 이상 봉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살기 위한 방편으로 글쓰기를 택했다. 무모한 시도였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는 문화대혁명, 홍위병, 공산당, 전쟁과 관련된 어두운 근대사를 집단이 아니라 개인의 시각에서 형상화한 빼어난 소설들을 쓰기 시작했다. 체호프와 고골의 소설을 연상케 하는 응집력과 통일성, 위트와 유머는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재능과 저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간단한 문장만 갖고도 원어민들보다 더 맛깔스럽고 완성도 높은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미국인들에게 보여줬다. 급기야 그는 전미도서상을 비롯한 각종 문학상을 휩쓸고 유명 대학 교수까지 되었다.
고전적 품격을 갖춘 그의 스토리 뒤에는 이러한 국가 폭력의 상처가 어른거린다. 하얼빈의 첫 글자를 따 영어 이름을 ‘Ha’라고 지을 정도로 조국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그는 입국을 거부당하고 유목민의 쓸쓸한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중국을 생각하면 미칠 것 같다’고 말한다. 그에게 중국은 ‘야만스러운 나라’다. 그렇다고 그 고향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그리움은 계속된다. 상처가 치유될 가능성이 전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고향이고 조국이니까. 그런데 이것은 우리에게도 그리 낯선 얘기가 아니다. 위대한 작곡가가 된 윤이상에게도 고향은 그리움과 상처였을 테니까.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