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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속으로]피사 사탑도 아니고… 부산 ‘기우뚱 오피스텔’ 공포

입력 | 2017-09-28 03:00:00


부산 사하구 D오피스텔이 왼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모습이 사진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이 오피스텔에 입주했던 16가구 주민들은 긴급 대피한 상태다. 구청과 경찰은 원인 규명에 나섰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아슬아슬해. 불안해서 못 살겠어.”

25일 부산 사하구 하단오거리 주택가에서 김모 씨(63·여)가 손가락으로 ‘기우뚱 오피스텔’인 9층짜리 D오피스텔을 가리키며 몸을 사렸다. 정문 앞에서 바라보니 건물이 왼쪽으로 기울어졌다는 걸 육안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김 씨는 “공사를 대체 어떻게 했기에 새로 지은 건물이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정말 큰일이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있던 주부는 “이 건물 때문에 동네 집값 다 떨어지게 생겼다”고 했다.

D오피스텔은 긴급 안전점검 결과 중심축에서 45cm가량 기운 것으로 드러났다. 올 2월 사용 승인을 받아 16가구가 입주했지만 모두 대피한 상태다. 건물 기울기가 150분의 1을 초과하면 재난 위험시설로 분류되는데 D오피스텔은 그보다 5배나 더 기울었다. 시공사 측은 “최근 폭우로 인해 건물 밑 지하수 흐름이 급변한 데다 인근에서 벌어지는 신축 공사 때문에 가뜩이나 약한 연약지반이 더 불안정해지며 기운 것으로 추정된다”며 “보강공사를 하면 건물을 안전하게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D오피스텔에서 30m 정도 떨어진 5층 빌라와 100m가량 떨어진 5층 오피스텔에서도 위험 신호가 감지됐다. 사하구가 민간 전문가에게 긴급 점검을 의뢰한 결과 이들 건물 모두 기울어진 것이 밝혀졌다. 구는 일대 건물 전체에 대해 안전성 및 지반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 동네는 1980년대 초반 흐르던 하천을 매립해 조성됐다.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국회의원(부산 사하갑)은 이날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일대는 지하 17m까지 펄인 연약지반으로 곳곳에서 건물이 기울어지고 있다. 사하구청이 매립지에 맞는 건축허가 기준을 마련하지 않아서 벌어진 참사”라고 지적했다.

사하구 관계자는 “건축허가를 내주기 전에 대지나 공법의 안정성과 안전성은 민간 건축사가 검증하기 때문에 민원이 접수되지 않으면 구가 건물 위험 상황을 인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18일 민원을 접수한 뒤 이튿날 곧장 현장을 확인해 시공사에 안전진단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지시했다”며 “22일 보고서를 받자마자 대피명령을 내리고 단수, 단전 및 세입자 이주 조치를 완료했다”고 말했다.

구는 시공사 관계자를 상대로 건물이 안전한 설계 및 공법으로 지어졌는지 조사하고 있다. 경찰도 계약부터 준공까지 건축 전반에 걸쳐 문제가 없는지 수사에 나섰다.

20년 경력의 건축사는 “수년간 문제없던 건물이 기울어질 경우엔 갑작스러운 지반 환경 변화를 의심해 볼 수도 있다”면서도 “신축 건물이 기울어졌다는 건 지반조사 자체가 잘못됐거나 허약한 지반 상태를 알면서도 비용 절감 등의 이유로 잘못된 공법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