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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판/동서남북]울산시민 희생 강요하는 ‘암각화 대책’

입력 | 2017-09-28 03:00:00


정재락·부산경남취재본부

‘사연댐 수위 조절, 수로(水路) 변경, 제방 축조.’

울산시 의뢰를 받은 서울대 석조문화재보존과학연구회(회장 김수진 교수)가 국보 제285호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 방안으로 이 세 가지를 제시한 게 2002년 1월이었다. 그로부터 16년이 흘렀지만 어느 것 하나 실현되지 않았다. 그동안 암각화는 물속에서 힘겹게 자맥질하고 있다. 수천 년 문화유산이 언제 사라질지 모를 위기에 처했지만 뚜렷한 보존 대책은 나오지 않고 관련 기관마다 같은 주장만 되뇌고 있을 뿐이다.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최근 열린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한 관계기관 협의회’도 상황은 비슷했다. 협의회에서 문화재청은 ‘사연댐 수문 설치안’을 내놨다. 반구대 암각화 하류에 있는 사연댐에 수문을 만들어 만수위(해발 62m)를 암각화가 침수되는 수위(52m) 이하로 낮추자는 방안이다. 역시 10년 넘게 반복되는 주장이다.

사연댐은 울산시민이 사용하는 생활용수의 50% 안팎인 21만∼22만 t을 매일 공급한다. 댐 수위를 낮추면 울산시민이 쓸 물은 당연히 부족해진다. 대체할 수원(水源)이 없는 울산으로서는 모자라는 물을 낙동강에서 끌어와야 한다. 그것도 한 해 물값 약 200억 원을 한국수자원공사에 주고서 말이다. 게다가 울산 취수원은 낙동강 하류인 경남 양산시 원동에 있다. 부산시가 추진하는 낙동강 하구둑 철거가 현실화되면 원동취수장까지 바닷물이 유입될 확률도 높다. 상류에는 공단이 밀집해 있어 물이 오염될 우려도 높다.

문화재청은 “사연댐 수위를 먼저 낮추면 청도 운문댐 물을 울산에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한다. 이 역시 2009년 12월 정부가 추진했지만 경북 정치권과 주민이 반대해 무산된 안이다. 과연 울산시민 가운데 사연댐 물 대신 낙동강 물을 사와서 생활용수로 쓰자는 데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황당한 주장은 또 있다. ‘암각화 보존을 위해 울산 앞바다에 떨어지는 빗물을 모으는 시설을 설치하고 울산 주택 변기를 절수형으로 교체하자’고 한 대학교수는 주장한다. 빗물을 모아 모자란 생활용수를 대신하자는 얘기다. 울산시민이 쓸 만한 용수를 공급하려면 집수시설은 얼마나 크게 만들어야 할까. 변기 물 절약을 무작정 강요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울산시민 희생만 강요하는 주장은 암각화 보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울산시는 암각화 앞에 흙과 돌로 둑(생태제방)을 쌓아 물길을 바꾸자고 주장한다. 암각화 침수도 막고 물 문제도 해결하는 방안이다. 2013년 2월 한국수자원학회(책임연구원 송재우 홍익대 명예교수)가 처음 제시했다. 환경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문화재청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물 부족 문제가 걸림돌인 현 시점에서는 검토해 볼 만하다.

정재락·부산경남취재본부 ra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