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 시행 1년]과태료 처분받은 7명 만나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지자체 암행감찰에 이 사실이 적발됐다. 두 사람 모두 법원에서 20만 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위반이었다. 자진신고하지 않은 B 씨는 감봉 2개월 징계까지 받았다. A 씨는 “호의가 독이 됐다. 내 잘못된 행동으로 공무원 앞길까지 막은 것 같아 미안할 뿐”이라고 말했다.
○ “실수 되풀이 않겠지만…청탁은 아냐”
본보는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과태료 부과 처분을 받은 사람을 수소문해 7명을 직접 또는 전화 인터뷰했다. 적게는 1만5000원, 많게는 30만 원 상당의 금품을 건넸다가 적발됐다. 대부분 직무연관성을 인식하지 못한 결과였다. 인허가, 지도 및 단속, 인사·평가 같은 직무와 관련이 있으면 한 푼도 주고받아선 안 된다. 단,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직무연관성이 있어도 원활한 직무수행 차원에서 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 축의금 10만 원까지 허용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3·5·10’을 지켜도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회사원 C 씨는 세무서 공무원에게 5만 원짜리 우편환을 보냈다. 과세자료 공개를 요청하는 민원 때문에 알게 된 공무원이다. 결혼 휴가를 떠나 자리에 없다는 소식을 듣고 축의금을 보낸 것이다. 해당 공무원은 자진 신고했다. 법원은 C 씨가 이전에도 민원을 신청한 걸 이유로 직무 관계자의 청탁으로 판단하고 과태료 10만 원을 결정했다. C 씨는 “수차례 민원을 넣으며 얼굴을 익혔는데 (결혼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지방의 한 마을 이장인 D 씨는 관내 공무원이 영전해 열린 송별회 자리에서 전별금 명목으로 30만 원을 건넸다 지자체 감사에 적발됐다. 그는 “수십 명이 모인 자리의 회식비에 보태라고 준 거지 개인에게 준 돈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또 “평소 술도 잘 안 마시고 경각심도 있었는데 오해 탓에 과태료까지 물어 정말 억울하다”고 말했다. 지방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E 씨는 한 식당에서 낯익은 지방법원 판사를 만났다. 판사는 가족과 식사 중이었다. E 씨는 식당을 나가며 판사 가족의 식사비 2만8000원을 몰래 계산했다. 판사는 자진 신고했다. E 씨는 “위반일 줄 알았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청탁금지법이 취지에 맞게 시행 중인지 의문도 제기했다. C 씨는 “부정한 청탁을 막는 게 원래 목적인데 미풍양속까지 오해를 사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다”고 털어놨다. 상급자 여러 명에게 한과세트를 선물했다가 적발된 한 공공기관 직원은 “1만5000원짜리 명절 선물로 무슨 부정 청탁을 하냐”며 “청탁 없었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권익위 조사관은 들어주지도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 ‘예방주사’ 효과, ‘꼼수’도 여전
위반자들은 대체로 2, 3배 상당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전과자로 남지 않는 가벼운 처벌이지만 주변에 미치는 효과는 작지 않다. 서울의 한 지구대에서 근무한 F 경위는 출동현장에서 신고자 등으로부터 음료수를 받았다가 적발됐다. 20만 원의 과태료를 내고 타 지구대로 전보됐다. F 경위의 한 동료는 “과거에 음료수 한잔 정도 받아 마시던 관행은 있었다”며 “요즘에는 민원인이 호의로 건네는 박카스만 봐도 손사래를 친다”고 말했다. 상품권을 받았던 공무원 B 씨의 동료도 마찬가지다. 자체 징계는 기록에 남아 포상, 승진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동료 공무원은 “내 주변에는 없겠지 하며 막연히 생각했는데 확실히 각인됐다”며 “사소한 지시도 없어지고 밖에서 사람 만나던 일도 확 줄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탁금지법을 피하기 위한 꼼수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는 단골손님에게 “주류는 외부에서 반입해 달라”고 제안하고 있다. 식당 주인은 “메뉴가 대부분 3만 원 전후라 술값이 포함되면 금액을 쉽게 넘는다”며 “청탁금지법 위반 소지를 없애려 일부 손님을 대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결혼식장에서는 일명 ‘축의금 쪼개기’가 성행이다. 동호회나 회사, 단체 단위로 축의금을 내는 경우 10만 원을 넘는 경우가 많아 구성원 개인 단위로 금액을 나누는 것이다. 올 4월 결혼한 G 씨는 평소 알고 지낸 특정 업체 대표를 포함해 일면식 없는 해당 업체 소속 직원 명의로 각각 10만 원씩 총 50만 원의 축의금이 들어온 사실을 확인하고 모두 돌려줬다. 그는 “법 위반 소지가 있고 상대도 잘못을 깨닫고 사과했다. 마음만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배중 wanted@donga.com·김예윤 / 대전=지명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