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이 없었다. 그 어떤 표지도 없었다. 꽤 큰 규모의 통유리 건물인데도 말이다. 안내를 맡은 샤넬 본사 홍보담당 프랑스 직원은 몸을 기울여 소곤대듯 말했다. “이곳의 주소를 노출시키면 안 돼요. 우리는 샤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불과 몇 달 전부터 일부 프레스에만 이곳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1] 샤넬 문화유산 보관소의 한 전시실. 샤넬의 옷과 향수 등이 진열돼 있다. [2] 깃털 장식이 돋보이는 2017∼2018 샤넬 오트쿠튀르 컬렉션. [3]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는 샤넬 르사주 공방. [4] 샤넬 문화유산 보관소에 보존 중인 샤넬의 의상. ⓒCHANEL Photo Antoine Dumont·샤넬 코리아 제공
나는 프랑스 파리의 외곽에 있었다. 그날은 19일(현지 시간)이었다. 샤넬이 ‘문화유산 보관소’라고 일컫는 곳…. 이 정도는 밝혀도 될 것이다.
1921년 세상에 처음 나왔던 샤넬 N°5 향수, 럭셔리 경매에서 확보했다는 1930년대 샤넬 파우더, 6000여 점의 시대별 샤넬 액세서리, 2009년 봄여름 오트쿠튀르 때 일본 아티스트 가모 가쓰야가 디자인했던 흰색 종이로 만든 꽃 머리 장식…. “당신은 샤넬의 역사 속으로 다이빙한 거라니까요.” 방 내부 온도 20도, 습도 50∼55%, 조도(照度) 80럭스 이하…. 샤넬의 역사는 과학적 시스템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이 비밀의 건물에 가기 전, 샤넬의 자수와 깃털 장식을 만드는 공방 두 곳을 방문했다. 가브리엘 샤넬(1883∼1971)이 만들고 카를 라거펠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84)가 1983년부터 합류해 이어가고 있는 샤넬 창의성의 원천! 흥미로운 점은 디지털 세상이 될수록 ‘샤넬 월드’에서는 장인의 ‘한 땀, 한 땀’이 늘어간다는 점이다.
“어느 순간 자수가 대중화됐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시적(詩的)인 ‘손맛’을 만들기로 했어요. 조개와 나무로 자수를 하고, 3차원(3D) 프린팅도 도입했어요.”(위베르 바레르 ‘르사주’ 공방 디렉터) 이렇게 제작된 샤넬 제품들은 ‘컬처 샤넬’(2014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마드모아젤 프리베 서울’(올해 6, 7월 서울 디뮤지엄) 등의 아카이브 전시를 통해 ‘서울 나들이’를 했다.
안 이달고 프랑스 파리 시장은 올해 3월 이렇게 발표했다. “파리 의상 장식 박물관인 팔레 갈리에라에 프랑스 최초의 패션 상설 전시실이 2019년 개관합니다. 샤넬이 570만 유로(약 77억 원)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 전시실의 명칭은 ‘가브리엘 샤넬 룸’이 될 것입니다. 샤넬 덕분에 파리가 패션의 고향이란 걸 증명할 수 있게 됐습니다.”
파리=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샤넬 N°5 향수
르사주
※콜라주(collage)는 본래 여러 이질적 요소를 함께 붙이는 미술 기법을 가리킵니다. 이 지면은 새로운 경향으로 떠오르고 있는 예술과 산업의 만남을 주제로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