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대학과 학과에 대한 자신의 고정관념을 주입하면 곤란 학생 혼자 결론내기 어려울 땐 전문가 도움 받는 게 좋아
학생: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늘 네가 의사가 되는 것이 소원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제 진로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김 학장: 그런데 진로상담을 받으러 온 이유는 뭔가요.
김봉환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장은… 1959년 생. 공주사범대 교육학과 졸업. 서울대대학원 석·박사 학위 취득. 1992년부터 한국기술교육대에서 근무하다 2005년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한국카운슬러협회 회장이기도 하다. 대표 저서로는 ‘학교진로상담’ ‘학교상담과 생활지도’ 등이 있다.
김 학장: 무엇 때문이죠?
학생: 체험관에서 설명을 듣고 직업 정보 등을 찾아보았더니, 제가 그동안 의사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음을 깨달았거든요. 공부해야 하는 과목들도 어렵기만 하고…. 무엇보다 흥미와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김 학장: 그러면 워크넷에 탑재된 ‘청소년 직업흥미검사’를 해보고 그 결과를 다음주에 가져오세요.
김봉환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장(58)은 진로교육·진로상담의 한길을 25년여 걷고 있는 상담학의 권위자다. 요즘도 한 해 평균 70∼80건(숙명여대 학생들의 진로·대인관계·취업상담 포함)의 진로상담과 연구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학입시철을 맞아 진로선택에 고민하고 있을 수험생은 물론 중고교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도움이 될 말을 듣기 위해 20일 숙명여대로 김 학장을 찾아갔다.
김 학장: 검사결과를 보니 학생의 홀랜드 1차 코드가 E(진취형)로 나왔군요. 의사의 홀랜드 코드는 I(탐구형)인데 정반대예요. 그러니까 학생이 적성에 잘 안 맞는 것 같다고 느끼는 것이고요. 나와 함께 E코드에 속한 직업들을 탐색해 보도록 해요. E코드에 속한 직업으로는 경영인, 관리자, 언론인, 판매인 등이 있어요. 이러한 직업들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나요?
학생: 지금껏 의사 외엔 생각해보지 않아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김 학장: 그러면 E코드에 속한 대표적인 직업들을 정리해 줄게요. 집에 가서 워크넷에 있는 한국직업전망에서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중심으로 직업을 살펴보고 그중 다섯 가지를 정해 다시 만나요.
김 학장: 어때요? 다섯 가지를 골랐나요?
김 학장: 좋아요. 학생은 고등학교 1학년이니까 직업군 정도까지 생각해두면 될 듯합니다. 남은 기간에 좀 더 구체적으로 직업 정보를 탐색하고, 진로진학상담 선생님과 의논해 학과를 정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이 학생은 이후 부모와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고비를 잘 넘기고 2학년 때 문과를 선택해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김 학장은 “진로선택을 잘하려면 반드시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고 탐색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며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학과를 선택하면 전공과 적성의 불일치로 고민하거나 경력개발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진로교육 못잖게 진로상담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진로교육과 진로상담은 사실 비슷하면서도 구별되는 면이 있습니다. 진로교육은 목표를 설정해 학생들이 그 목표에 도달하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반면 진로상담은 진로문제를 호소하는 학생 등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도록 전문상담사나 진로전담교사들이 개인상담 등을 통해 도와주는 것입니다. 진로상담은 특히 청소년에게 중요합니다. 청소년들의 고민거리 중 상당부분은 성적 문제와 진로 문제인데, 진로상담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매우 유용합니다. 교실붕괴를 막고 청소년 비행을 예방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진로와 연계된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학습동기를 유발하면 교실붕괴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또한 진로상담을 통해 합리적인 진로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는 학생은 비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적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진로상담 수준은…
“10여 년 전부터 학교현장에서 진로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학교진로상담도 활성화됐다. 특히 중등학교에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학생들이 진로를 결정하는 데 있어 부모의 역할은…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진로선택 문제를 언급할 때 지적되는 것 중 하나가 ‘부모 위주의 진로결정’이다. 부모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대학과 학과에 대한 고정관념을 자녀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입해서는 안 된다. 부모는 자녀가 진로결정의 주체가 되도록 이끌어주는 안내자, 공신력 있는 정보를 알게 해주는 정보제공자, 자녀의 결정을 존중해주는 정서적 지지자여야 한다.”
사람을 잘 설득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진로상담에서는 사실 상담자가 내담자(來談者)를 설득하는 건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다만 판단력이 미숙한 청소년들이나 시간적 제한 때문에 시급하게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 상담자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도 있다. 나는 직업카드와 학과카드 등 진로상담 도구와 다양한 진로상담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중요한 건 진정성과 공감적 이해다. 상대방의 감정을 배려하면서 나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공감(共感) 능력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공감은 내가 좋더라도 상대가 싫어할 만한 일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을 줄 아는 것이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의 유명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자신의 저서에서 공감과 기술(과학·기술·공학·수학)을 결합한 ‘공감형 기술직(STEMpathy)’은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맞는 말이다. 공감능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더욱더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KAIST에 이어 포스텍도 신입생 전원을 ‘무(無)학과’로 선발하고, 학생 스스로 진로를
결정하도록 하는 학제 개편을 단행했다. 대학들의 이 같은 노력이 학생들의 진로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포스텍이 전공별 정원을 없애 학생들의 진로 선택권을 보장하고, 학생들에게 2학년 2학기부터 전공을 선택하게 해 적성과 학업동기를 탐색할 시간을 준 건 놀라운 변화다. 다만 이 파격적인 실험이 성공하기 위해선 학교 측이 진로상담 등을 꾸준히 해 각 학과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학생들도 인기학과에 쏠리지 않고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좇아 학과를 선택해야 한다.”
김 학장은 공주사범대 재학시절 ‘생활지도’ 과목에서 상담 분야를 처음 접했다고 한다. ‘카운슬링의 원리’라는 책을 통해 상담 분야가 적성에 맞고, 인간의 행복을 위해 도와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데 매력을 느꼈다는 것. 전문상담사가 되기 위해 서울대대학원에서 상담교육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2∼13년 한국진로교육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올 8월부터 한국카운슬러협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한국카운슬러협회 회장으로서 계획은…
“한국카운슬러협회는 상담 관련 학술 연구와 상담전문가 양성을 통해 인간복지 향상을 꾀하는 학술단체다. 1963년 창립되었으며 우리나라 상담 관련 단체 중 가장 오래됐다. 현재 회원 중 교사 비율이 70%로 매우 높다. 앞으로 가족문제, 대인관계, 중독문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상담전문가들을 영입해 활발하게 활동할 계획이다.”
진로를 고민하는 우리 청소년들을 위한
‘꿀팁’은 없을까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오히려 고민이 없거나 고민을 하지 않고 진로를 선택하는 게 문제죠. 다만 고민을 하더라도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혼자서 결정하기 어려울 땐 진로진학상담 선생님을 찾거나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진로진학정보센터를 활용했으면 합니다. 취업과 관련해선 고용센터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손진호 전문기자 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