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철 사회부 차장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대법원장의 영문 표기가 치프 저스티스가 된 것은 2001년 기관 및 직위 영문 표기에 관한 내규가 제정되면서부터다. 그 이전까지 대법원장의 영문명은 특별한 기준 없이 ‘프레지던트(President)’와 치프 저스티스가 혼용됐다.
대법원장 영문 표기를 치프 저스티스로 통일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회의 내용 등 공식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다만 미국에서 연방대법원장을 치프 저스티스라고 부르는 점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정도는 추측이 가능하다.
대법원장 직명을 표기하는 데 어떤 영어 이름이 더 어울리는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우리나라 대법원장에게는 ‘제왕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큰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장은 13명의 대법관을 임명 제청하고, 헌법재판관 9명 중 3명을 지명할 권한을 갖고 있다. 3000명가량 되는 전국의 법관 인사권도 쥐고 있다. 이를 토대로 대법원장은 마음먹기에 따라 사법 권력의 지형을 흔들 수 있고, 일선 법원 재판에도 간접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진보 성향 법관 모임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인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명을 보수 야당이 강하게 반대한 것은 대법원장이 지닌 그런 힘 때문이다. 김 대법원장의 26일 취임사에는 이 같은 우려에 대한 대답과 자신이 수행해야 할 대법원장 직에 대한 고민이 곳곳에 녹아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대목은 대법원장 권한을 투명하고 민주적인 절차와 방식으로 행사하겠다고 약속한 점이다. 김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의 권한 행사는 한 사람의 고뇌에 찬 결단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과 사법부 구성원의 의사가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사법부의 정점에 홀로 서 있지 않고, 늘 법원 구성원들과 어울려 소통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사법의 정치화’를 걱정하며 자신의 취임을 반대했던 이들의 우려가 기우임을 보여주겠다는 이야기다.
“전관예우가 없다거나 사법 불신 우려가 과장된 것이라고 외면할 것이 아니다”라는 김 대법원장의 언급도 인상적이다. 그간 법원은 전관예우가 문제가 될 때마다 “전관예우는 오래전 이야기일 뿐”이라며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여 왔다. 전관예우가 많이 사라진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의 불신이 여전하다면 김 대법원장의 주문처럼 먼저 눈과 귀를 열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옳다.
전성철 사회부 차장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