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만 하차’ 인터넷 마녀사냥 겪고 복귀한 운전사 동승 취재
아이 엄마의 하차 요청을 외면했다는 잘못된 제보와 가짜뉴스로 고통을 겪은 김모 씨가 28일 240번 시내버스를 운전하고 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버스 운전사는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이어 거울을 쳐다봤다. 그제서야 오른발로 지그시 가속페달을 눌렀다. 다시 운전석에 앉은 뒤 생긴 버릇이다.
28일 만난 버스 운전사 김모 씨(60)의 얼굴에선 긴장이 느껴졌다. 그는 “아이 혼자 내렸으니 세워 달라”는 엄마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달린 것으로 알려져 비난을 받은 바로 그 ‘240번 시내버스’의 운전사다. 11일 인터넷에 올라온 목격담이 포털 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거쳐 가짜 뉴스로 탈바꿈하면서 ‘아동학대’ ‘막장운전’ 등의 집중 포화가 김 씨를 향했다. 졸지에 ‘공공의 적’이 됐다. 다행히 언론의 검증 보도를 통해 진실이 확인되면서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했던 김 씨는 일주일 만인 18일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28일 오후 2시 기자가 탄 240번 버스가 서울 광진구 화양초교 앞을 지나자 김 씨는 승객 쪽을 향해 외쳤다. 한 중년 여성이 조심스레 일어나 뒷문으로 향했다. 정류장에 도착하자 김 씨의 시선은 운전석 옆 후면거울에 고정됐다. 안전하게 내리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삐이익.’ 버스가 출발하자 커다란 책가방을 멘 남자아이가 벨을 눌렀다. 김 씨는 ‘후’ 하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다음 정류장에 아이가 내리자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뒤따라 내렸다. 김 씨는 출발하지 않았다. 그 대신 모자(母子)가 나란히 걷는 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그날 이후 아이들이 타고 내린 뒤에도 속으로 3초 셌다가 출발합니다. 하나 둘 셋 하고….”
건국대 앞을 지나고 나서 김 씨는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11일 오후 6시 반경 김 씨는 아이가 내린 건대역 정류장을 출발하고 10초가량 지나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는 “1차로 쪽 진입이 불가능했다”며 창문 밖 주황색 차단봉을 가리켰다.
버스 회사에는 김 씨 앞으로 온 편지 30여 통이 있다. 진실이 밝혀진 뒤 시민들이 보낸 사과 편지다. ‘잘 모르고 인터넷에 심한 욕설을 했다. 죄송하고 반성한다’는 내용이다. ‘충격을 조금이나마 덜어 드리고 싶다’며 화과자 세트를 보낸 시민도 있다. 처음 잘못된 목격담을 인터넷에 올린 누리꾼은 경찰서를 통해 용서를 구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하지만 김 씨는 “아직은 용서하기 어렵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그는 “(사건이 발생하고) 나흘쯤 되니 240번 버스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싹 사라졌다”며 “남은 건 상처 입은 나 자신뿐”이라고 말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