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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신진우]인력-예산만 늘린 외교부 ‘혁신 로드맵’

입력 | 2017-09-30 03:00:00


신진우·정치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9일 오랜만에 외교부 브리핑실에 들어섰다. 취임 후부터 마련해 온 ‘혁신 로드맵’을 직접 발표하기 위해서다. 비(非)외무고시 출신인 강 장관은 6월 취임사에서 장관 직속의 혁신 태스크포스(TF) 출범을 약속했다. 정부 안팎에선 강 장관의 TF가 외교부 특유의 폐쇄주의와 순혈주의를 뜯어고칠 수 있을지 관심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강 장관이 이날 내놓은 혁신 로드맵은 ‘역시나’에 그쳤다. 과연 외교부가 자체 개혁 의지와 역량이 있는지 의심케 했다. 우선 외교부는 이날 공개한 로드맵에서 본부 부서 10개를 절반 수준으로 통폐합해 조직 규모를 줄이겠다고 했지만 세부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TF 외부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A 씨는 동아일보의 통화에서 “외교부가 들고 온 초안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마디로 인원, 예산 늘리자는 얘기였다. 그나마 외부위원들이 강하게 문제 제기를 해 부서 통폐합 조항이나마 넣을 수 있었다”고 했다.

강 장관은 구체적인 통폐합 방향을 묻자 “(각 부서의) 기능 분석을 해봐야 알 것 같다”고 했다. 과장급 이상 간부의 여성 비율을 20%까지 늘리는 안도 아직 구상 단계에 불과했다. “실천 방식을 어떻게 고민하고 있느냐”고 묻자 “실행 가능한 목표치라 책정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주요 혁신과제 이행을 위해 신설되는 혁신이행팀에 대해선 외교부 내부에서조차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과장급을 주축으로 한 4명으로 된 팀이 무슨 실권을 갖고 개혁에 나설 수 있겠느냐는 거다. 외교부의 한 국장은 “외교부 특유의 보여주기 마인드”라고 토로했다.

이러다 보니 외교부 TF는 애초부터 쇼였다는 말까지 나온다. 자문위원장을 맡은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이날 브리핑에 배석해 “저희(자문위원들)도 (외교부에) 설득당했다”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자문위원 B 씨는 “외교부가 조직을 제대로 개혁할 마음이 있었다면 행정안전부 등 타 부처들과 협의라도 했을 텐데 그런 과정이 없었다”고 말했다. 거꾸로 외교부는 이날 인력 및 예산을 확대하겠다며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했다.

이날 외교부의 혁신 로드맵을 보면서 청와대 외교안보 파트 일각에서 “도통 외교관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 왜 나오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