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2일 아침 ‘최진실 사망’ 소식이 알려졌을 때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5개월 전 종영한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 호평을 받았고, ‘내 생애…’ 시즌2 출연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그였다. 야구선수 조성민과 화제 속에 결혼한 뒤 가정폭력과 이혼으로 사사(私事)는 공사(公事)가 돼버렸지만, 2005년 드라마 ‘장밋빛 인생’이 히트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으며 팬들의 큰 지지를 받고 있었기에….
“드라마나 영화에서 최 씨의 배역은 대부분 평범한 직장 여성이나 억척 아줌마 등 서민층을 벗어나지 않았다. 화려한 배역보다 서민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대중 친화적인 배우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동아일보 2008년 10월 3일자 10면)
최진실은 화려하거나 도도하기보다 귀엽고 친근한 이미지였다. 연예 활동 초반 함께 출연했던 배우들은 최진실의 배우 수명에 의구심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옆집 여동생’ 같은 이미지로 1990년대의 아이콘이 됐다. 신비스런 여배우 판타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가난했던 가정사와 억척스런 생활력은 오히려 최진실의 인기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스무 살의 나이에 연예계 생활을 시작해 CF와 단역을 거쳐 주연으로 발돋움하고 당대의 인기 여배우로 자리를 굳힌 성장사를 1990년대의 관객과 시청자들이 고스란히 지켜봤다. 그런 최진실이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은 믿기 힘든 사건이었다.
최진실 사망 소식을 보도한 동아일보 2008년 10월 3일자 1면.
최진실의 죽음이 지금도 안타까운 건 그가 목숨을 끊은 이유로 지적된 ‘인터넷 괴담’이 9년이 지난 지금도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인터넷 공간에서 확산되는 사채 루머와 악플에 시달렸다. 두 아이를 키우며 연기를 배우자 삼아 살기로 다짐하던 그였지만, 악플의 무차별 공격은 견디기 힘겨웠다. 세상을 떠나기 전날 그는 어머니에게 “세상 사람들에게 섭섭하다”고 울며 하소연했다고 한다(동아일보 2008년 10월 3일자 1면).
최진실 사후 그의 가족에게 불행이 이어졌다. 전 남편 조성민과 친동생 최진영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지난 주말 동아일보에 소개된 240번 버스기사는 “악플 탓에 지옥과 천당을 들락날락했다. 남은 건 상처 입은 나 자신뿐”이라고 털어놨다. 그 역시 버스가 엄마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달렸다는 인터넷 괴담에 고통받았던 사람이다. 이렇듯 확인되지 않은 인터넷 루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상처받는 일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최근에는 괴담방지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240번 버스 기사는 상처받았음에도 다시 희망을 갖겠다고 했다. 최진실은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남은 가족들은 사랑과 희망이 함께 하길 기원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