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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 출판평론가
토머스 페인(1737∼1809)이 1776년 1월에 펴낸 팸플릿 ‘상식(Common Sense)’은 간행 석 달 만에 10만 부 넘게 팔리면서 아메리카 식민지 사람들의 독립 의지에 불을 붙였다. 그는 영국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정부는 최고의 것이라도 필요악일 뿐이다. 최악은 참을 수 없는 정부다. 정부에 의해 괴롭힘당하거나 고통을 겪는다면 차라리 정부 없는 나라가 더 낫다.”(남경태 옮김·2012년)
영국의 존 밀턴이 발표한 ‘아레오파기티카’(1644년)도 팸플릿으로 분류되곤 한다. 밀턴은 출판물을 검열하려는 법을 철회하라고 주장하면서 언론 자유를 역설한다. “진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책도, 전략도, 검열제도 필요 없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오류가 진리의 힘에 맞서 싸울 때 사용하는 수단입니다. 진리에게 자유로운 공간을 제공해주십시오.”(박상익 옮김·2016년)
조선시대의 팸플릿은 익명으로 체제나 특정 정치 세력을 비판하고 민심을 선동하는 벽서(壁書) 또는 괘서(掛書)였다. “여왕(문정왕후)이 집정하고 간신 이기(李기) 등이 권세를 부려 나라가 망하려 하니 보고만 있을 수 있는가.” 1547년(명종 2년) 경기도 과천 양재역 벽에서 발견된 이 벽서로 대규모 옥사가 일어났다.
사상사에 남거나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데 기여한 팸플릿도 있지만, 대다수는 허위와 과장으로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는 데 그쳤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의 팸플릿은 게시글이나 댓글이다. 예전 팸플릿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빠르고 광범위한 전파 속도와 범위가 그 악영향의 위험성을 키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