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날짜가 일찌감치 공고되는 다른 부문 노벨상과 달리 노벨문학상은 발표 시간을 전날에야 알린다. 가령 ‘내일 발표한다’고 오늘 알리는 식이다. 그러나 관례라는 게 있어서, 해마다 10월 첫째주 혹은 둘째주 목요일에 발표해 왔다. 자연히 이 즈음은 노벨문학상 발표의 계절이다.
포르투갈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주제 사라마구(왼쪽),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세인트루시아의 시인 데릭 월컷. 동아일보DB·위키피디아
19년 전인 1998년 10월 8일에는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가, 그보다 6년 전인 1992년 10월8일에는 세인트루시아의 시인 데릭 월컷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사라마구는 영화화된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뜬 자들의 도시’ ‘수도원의 비망록’ 등으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졌다. 데릭 월컷은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세인트루시아 출신 시인으로, 미국 보스턴대와 영국 에식스대 등 미국과 유럽의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사라마구는 포르투갈 최초, 월컷은 세인트루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수년에 걸쳐 수상후보로 언급됐었다. ‘상 받을 만한 작가’였다는 얘기다.
사라마구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눈먼 자들의 도시’의 한 장면. 동아일보DB
“한때 스페인과 더불어 세계의 정복자로 번영을 구가했지만 지금은 유럽공동체의 가난한 변방국가로 처지고 만 포르투갈. 98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 주제 사라마구는 그 쇠락한 조국에 영광을 안겼다. (…) 그는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포르투갈이 유럽연합에 끼어들기 위해 전전긍긍하기보다는 ‘과거 위대한 세계 시민이었던 포르투갈인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해왔기 때문이다.”(동아일보 1998년 10월9일자 29면)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보도한 1998년 10월9일자 1면.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의 문화적 요소가 뒤섞인 카리브해 출신인 그(데릭 월컷)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최근 국제적인 조류인 다문화주의 다인종주의의 조화로운 결합을 그의 문학 속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또 서인도제도의 문학이 최초로 국제적 인정을 받은 계기가 되고 있다.”(동아일보 1992년 10월9일자 13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세인트루시아의 시인 데릭 월컷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 동아일보 1992년 10월9일자 13면.
국내 시간으로는 해마다 오후8시에 발표되기에 빠듯한 마감으로 인해 담당기자들을 분주하게 하는 ‘연례행사’이지만, 20세기까지 노벨문학상은 한국 언론엔 먼 나라 얘기였다. 2002년부터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외신에서 이름이 거론되면서 언론과 독자들은 노벨문학상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 외국이 주는 상에 왜 이렇게 애타야 하느냐, 정치적인 상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지만 노벨문학상이 세계 문학계에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것보다 단연 큰 것은 사실이다. 정치적인 상이라는 비판도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수상자가 미국과 유럽에 편중돼서다. 더욱이 최근에는 예상을 벗어난 수상자 선정으로 인해 노벨문학상 발표를 주목했던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논픽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가수 밥 딜런 등이 그랬다.
올해의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도 유력후보로 꼽혔던 게 아니어서 예상 밖 인물로 언급되지만, 그의 작품이 뛰어난 문학성을 지녔음은 다수가 공감하는 바다. 그는 일본계 영국인이어서 일본의 환호도 크다. 이번 수상도 한국을 비켜난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소설가 한강 씨가 지난해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자가 된 데 이어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수상하고, 메디치 외국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등 지속적인 조명을 받고 있다. 유럽 문단이 주목해온 소설가 이승우 씨를 비롯해 배수아 천명관 정유정 구병모 씨 등도 해외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맨부커상 수상 당시 한강 씨는 “이런 일(한국 작가가 해외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정도로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의 예언이 곧 이뤄지길, 뮤즈의 노래를 듣는 남자가 새겨진 노벨문학상 메달을 거머쥐는 한국인 작가가 조만간 나오기를 기대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