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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김운용 前 IOC 부위원장

입력 | 2017-10-08 03:00:00

6개 언어 능통 ‘태권도 대부’… 한국 스포츠 외교에 큰 족적




6개 언어에 능통한 ‘국제인’이었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유일한 사람’으로 불릴 만큼 스포츠 외교에 정통했던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사진)이 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6세.

지난달 27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개촌식에 다녀온 고인은 이후 감기 증세를 보이다 2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으나 다음 날 오전 타계했다. 지난달 30일 “감기가 들어 잠시 쉬고 있다”는 것이 고인의 측근이었던 윤강로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메시지였다.

“결코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냉정함과 탁월한 외교적 수완은 늘 우리의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었다.”

작고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IOC 위원장(스페인)은 생전의 김 전 부위원장을 이렇게 평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유색인종 최초로 IOC 위원장에 도전했던 한국 스포츠 외교의 거목이었다. 그러나 2004년 세계태권도연맹(WTF) 후원금 유용과 외국환관리법 위반 등으로 구속 기소됐고, 이후 징역 2년과 추징금 7억8000여만 원을 선고받은 뒤 복역했다. 2008년 광복절 특사로 사면 복권됐다.

1986년 IOC 위원에 선출된 고인은 대한체육회 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IOC 집행위원 및 부위원장 등을 지내면서 서울 올림픽과 한일 월드컵 등 국제대회 유치에 기여했다. 국기(國技)인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남북 공동 입장을 성사시킨 것은 고인의 중요한 업적으로 꼽힌다. 윤 원장은 “각종 스포츠 회의를 국내에 유치하면서 관련 인사들이 반드시 국기원에 들르도록 했고 군대식 차트를 넘기면서 태권도에 대해 설명했다”며 태권도의 세계화에 앞장선 일을 기억했다.

1931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어릴 적부터 육상 단거리와 씨름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유도, 복싱, 스피드스케이팅, 태권도 등에도 도전할 만큼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재학 시절 6·25전쟁을 만났다. 통역 장교로 입대해 뛰어난 영어 실력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연설을 통역하기도 했다. 청와대 경호실 보좌관으로 일했던 고인은 ‘태권도 세계화’를 목표로 1971년부터 대한태권도협회장을 맡았다. 1973년 세계태권도연맹 총재가 되면서 국제 스포츠 무대에 진출했다. 1986년 IOC 위원이 된 뒤 1988년 IOC 사상 최단 기간(1년 10개월) 만에 집행위원이 됐다. 1992년에는 역시 최단 기간(5년 9개월) 만에 IOC 부위원장에 올랐다. 제16대 국회의원(비례대표·새천년민주당)으로 정계에도 몸담았다. 그러나 2000년에 터진 2002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 유치를 둘러싼 뇌물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입지가 좁아졌다. 2001년 IOC 위원장에 도전했으나 자크 로게(벨기에)에게 패했고 2002년에는 9년 동안 이끌었던 대한체육회장에서 물러났다. 고인은 이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방해설에 시달렸는데 생전에 이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했다. 2005년 복역중 IOC 위원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고인은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에 능통했다. 일본 NHK의 스모 중계방송 때 특별 해설을 한 적도 있다. 스포츠 외교에서의 업적을 인정받아 2015년 스포츠영웅에 선정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동숙 씨와 아들 정훈 씨, 딸 혜원 혜정 씨가 있다. 장례는 태권도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 세브란스병원, 발인은 9일 오전 7시. 영결식은 9일 오전 8시 30분 국기원에서 열린다.

김종석 kjs0123@donga.com·이승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