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언론인으로서의 춘원 조명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한글 소설 ‘무정’으로 청년들을 열광케 했던 춘원은 한자로 가득찬 신문기사와 논설도 한글로 쉽게 써야 한다고 주 장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DB
한국 언론사 연구의 권위자인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78)가 춘원 이광수(春園 李光洙·1892∼1950)의 언론인으로서의 활동을 실증적으로 조명한 책을 펴냈다. ‘언론인 춘원 이광수’에서 정 교수는 일본 경찰의 비밀 기록과 신문 잡지를 조사하고, 춘원의 글을 찾아내 그의 언론 활동을 추적했다.
춘원은 1919년 도쿄 유학생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뒤에는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와 긴밀한 관계였던 ‘독립신문’을 발행하면서 창간사를 통해 5가지 사명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독립신문의 개방적인 사실보도 원칙에 대해 적에게 비밀이 누설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춘원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적의 눈을 가리우기 위하야 동포의 눈을 가리우는 어리석음을 배우지(學) 아니하리라. 또 동포를 격려할 필요를 아노라. 그러나 사실을 과장하거나 한갓 허장성세의 논설로 동포를 속이는 죄를 짓지 아니하리라. 허위나 과장이나 논(論)을 위한 논, 문(文)을 위한 문은 아등의 결코 취하지 아니할 바라.”
춘원은 귀국 후에는 동아일보 편집국장 두 차례, 조선일보 부사장 겸 편집국장으로 재직했다. 동아일보 재직 시절에는 아산 현충사 유적 보존 운동을 벌이면서 역사소설 ‘이순신’을 직접 써서 연재했고, 농촌 계몽과 한글 보급을 위한 브나로드 운동을 할 때는 신문 캠페인 소설 ‘흙’을 연재했다. 정 교수는 “춘원의 문학 활동은 언론인으로서의 활동과도 깊이 연관돼 있었다”고 했다.
정 교수는 “춘원은 일본 유학 시절부터 늘 우리말과 한글의 우수성을 예찬해 왔다”며 춘원이 러시아에서 발행된 ‘대한인정교보’에서 일할 당시에 한글 가로쓰기와 풀어쓰기, 한글 필기체를 제안했던 희귀 자료도 발굴해 소개했다. 그는 “친일 논란에도 불구하고 춘원은 근대문학의 씨앗을 뿌린 개척자이자 끊임없는 논쟁의 중심에 섰던 논객으로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