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 사진 제공 문창용 감독
이형삼 전문기자
히말라야 산맥 너머 인도 최북단의 라다크 마을. 소년 앙뚜는 6세 때 ‘린포체’(환생한 티베트불교 고승)로 인정받는다. 노스승 우르갼은 그와 함께 기거하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전생에 살던 사원에서 제자들이 찾아와 린포체를 모셔 가야 하지만, 앙뚜의 전생 사원은 중국의 탄압을 받는 티베트에 있어 아무도 그를 찾아오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가짜 린포체라며 손가락질한다. 우르갼은 상처를 키우는 앙뚜를 보다 못해 열두 살 제자의 손을 잡고 3000km의 험난한 티베트행에 나선다. 두 달 반에 걸친 여정의 끝엔 먹먹한 이별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
전생이니 환생이니 하는 허황한 관념으로 코흘리개를 엄마 품에서 떼어내 힘겨운 수행으로 내몰고, 갖은 마음고생을 겪게 한 것도 모자라 수천 리 원행 끝에 더 큰 좌절감을 안긴다? 냉철하고 합리적인 서양인의 눈엔 명백한 아동학대로 비칠 수도 있을 텐데, 서양 관객들은 두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다가 엔딩 크레디트가 끝날 때까지 기립박수를 보냈다. 문창용 감독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서늘하게 일깨워준 가장 선명한 덕목은 초심과 끈기다. 앙뚜를 품는 우르갼의 한결같음도 그렇지만, 영화 제작 과정을 일관하는 초심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다큐멘터리다. 문 감독은 2009년 동양의학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라다크를 처음 찾았을 때 승려이자 전통의사인 우르갼을 만났다. 다섯 살짜리 동자승 앙뚜가 스승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이듬해 다시 라다크를 찾았을 때 스승과 동자승의 관계는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앙뚜가 린포체로 인정받으면서 우르갼이 앙뚜의 비서 노릇을 자처하게 된 것이다.
문 감독은 그 후 꼬박 7년 동안 촬영에 매달렸다. 프리랜서 PD로 방송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돈이 좀 모이면 틈틈이 라다크로 향했다. 그렇게 10여 차례 라다크로 날아가 1∼3개월씩 머물렀다. 못 먹고, 못 씻고, 동상과 고산병에 시달리며 눈보라를 헤쳤다. 이야기의 결말도 모르고, 따라서 작품의 완성 여부도 장담할 수 없는 막막한 기다림의 연속. ‘내 욕심만 차리느라 여러 사람 고생시킨다’는 자책을 떨치지 못했다. 그렇게 다들 지쳐갈 때면 그가 원하던 ‘절정의 순간’들이 하나둘씩 뷰파인더에 들어왔다.
그는 “출연자도 카메라에 지쳐야 한다. 그래서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눈앞의 대상에만 집중해야 비로소 신(scene) 하나가 나온다. 그런 ‘돌발상황’이 올 때까지 오래 기다리고 많이 버려야 한다”고 했다. 조급한 연출자가 극적 효과를 위해 돌발상황을 촉발하면 진정성을 잃고 만다(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접하는 장면이다). 스태프는 그와 후배 감독(전진), 현지 가이드가 전부였다. 예산 탓에 스태프를 더 늘릴 수도 없었거니와 출연자가 낯선 사람을 의식해 감정의 흐름이 끊어지진 않을까 우려해서다. 현지 가이드가 바뀌면 두 출연자와 사나흘쯤 같이 지내게 해 서로 익숙해진 다음에야 카메라를 켰다. 그렇게 800시간 분량을 찍어 96분짜리 영화로 압축했다. 촬영 후 편집 작업에만 1년이 걸렸다. 인내, 기다림, 배려. 우리가 점차 잃어가는 가치들이다.
극장 개봉 이후 국내에서도 호평이 이어지는 데 대해 문 감독은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처럼 담담하게 겸양을 보였다.
이형삼 전문기자 h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