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지현 사회부 기자
중학교 2학년이던 딸, 문모 양은 6월 24일 집에서 친구들과 있다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기형성 뇌출혈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지만 딸은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의학적으로 기형성 뇌출혈은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14세 소녀에게 무슨 스트레스가 그리 많았을까. 쓰러지기 이틀 전 문 양은 자신이 다니던 서울 동대문구 K여중 상담실을 찾았다.
4월 평소 친하게 지낸 고등학교 1학년 A 군 페이스북에 문 양이 댓글을 단 것이 발단이었다. ‘요즘 바쁜가 봐. (내 페이스북에) 댓글 잘 안 다네’라는 취지의 글이었다. 이를 본 A 군 여자친구 B 양(중2·13)이 문 양을 불러냈다. B 양은 문 양 이마를 손으로 밀치며 “네가 걸레냐”라는 등 욕설을 퍼부었다. 이어 문 양의 뺨을 수차례 때리고 화를 냈다. 다른 친구들 앞에서 급작스레 당한 일에 문 양은 심한 모멸감이 들었지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고 한다.
그날 이후부터 문 양은 택배기사가 누른 집 초인종 벨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누가 또 공격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공포감이 들었다고 한다. 인근 파출소를 찾아가 도와달라고 했지만 경찰은 “학생들 다툼이어서 경찰이 해결해 주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상은 문 양이 고민 끝에 학교 상담실을 찾아가 상담교사 앞에서 작성한 사안확인서에 나타난 내용이다.
문 양 어머니는 딸아이가 쓰러지고 나서야 상담교사에게서 그 같은 고민을 듣고는 가슴을 쳤다. 자존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딸은 엄마에게조차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문 양 학교와 B 양 학교에서 합동으로 학교폭력위원회가 소집됐다. B 양에게 며칠간 유기정학과 문 양 가족에게 서면으로 사과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문 양 어머니는 “딸은 중환자실에 누워있는데 B 양도, B 양 부모도 사과하러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경찰에 B 양을 폭행과 협박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경찰은 “가해자 나이가 만 13세가 안 된다. (처벌받아 봤자) 훈방 정도 나올 확률이 크다”며 고개를 저었다. 또래 학생을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구타해도 ‘어리다’는 이유로 구속조차 되지 않는데 만 14세도 안 된 아이가 뺨 몇 대 때렸다고 법의 심판을 받지는 않는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노지현 사회부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