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 스무 아흐렛날
면사무소 호적계에 들러서
꾀죄죄 때가 묻은 호적을 살펴보면
일곱 살 때 장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님의
붉은 줄이 있지
돌 안에 백일해로 죽은 두 형들의 붉은 줄이 있지
다섯 누이들이 시집가서 남긴 붉은 줄이 있지
우리 동네에서 가장 많은 호적의 붉은 줄 속으로
용하게 자라서 담자색으로 피어나는 으름넝쿨꽃
지금은 어머니와 두 형들의 혼을 모아
쭉쭉 뻗어나가고
시집간 다섯 누이의 웃음 속에서
다시 뻗쳐 탱자나무숲으로 나가는 으름넝쿨꽃
오히려 칭칭 탱자나무를 감고 뻗쳐나가는
담자색 으름넝쿨꽃
추석은 하나지만 추석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행복한 만남, 차례와 성묘, 모처럼의 휴식일 수도 있고 일상의 연장, 박탈감의 극대화, 부침개와 설거지일 수도 있다. 상황은 천차만별이지만 모두들 알고 있다. 추석의 중심에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 말이다.
바로 그 가족의 이야기가 구재기 시인의 작품에 들어 있다. 이 시에서 가족사의 탐색은 호적으로부터 시작된다. 오래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형들은 돌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누이들은 결혼을 해서 남편의 호적으로 옮겨갔다. 머물다가 사라진 사람들에 대해서, 호적은 붉은 줄로 표시했다. 시인은 말하지 않았지만 호적의 붉은 줄들은 마치 붉은 상처처럼 보였을 것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