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체 ‘PB 업그레이드’ 승부수
100% 이탈리아 재료 쓰는 ‘발피자’ 이탈리아 볼로냐 외곽 냉동피자 공장 ‘발피자’에서 생산되는 이마트 자체브랜드(PB) 피코크 피자. 발피자의 바네스 비아지 최고경영자(CEO)는 “밀가루까지 이탈리아산을 쓰며 품질에 초점을 맞춰 세계 각지의 유통업체에 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발피자 제공
이탈리아 북부도시 볼로냐 외곽의 냉동피자 제조기업 ‘발피자’ 직원들이 입을 모아 자랑했다. 지난달 말 찾은 이 공장에는 24시간 숙성을 마친 도 반죽이 도착해 있었다. 기계가 도를 얇고 반들반들한 원으로 만들어 컨베이어벨트로 보냈다. 직원 4명이 도를 만지자 고르게 펴졌다. ‘손맛’이 맛의 비결이라고 한다. 도의 달인들은 조금이라도 반죽이 뭉쳐 있으면 과감히 폐기했다.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가자 다른 직원들이 피자 위에 고르곤졸라 치즈를 얹고 있었다. 토핑도 손으로 뿌린다. 토핑을 마친 피자는 나무 땔감이 타고 있는 화덕 오븐을 거쳐 냉동 시스템으로 들어갔다. 완성된 피자가 포장라인에 도착했다. 포장 박스에는 한글이 눈에 띄었다. ‘크림치즈 피자.’ 이마트 자체브랜드(PB)인 피코크의 상품이다.
발피자가 피코크 피자를 만들게 된 계기는 2008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자체라벨(PL) 박람회였다. 매년 제조 및 유통기업들이 참여해 PB 상품 개발을 모색하는 행사다. 이마트는 여기서 접한 발피자 제품을 2010년부터 국내 매장에서 팔았다. 2014년에는 피코크 브랜드를 입혔다. 피코크로 이름을 붙이고 리뉴얼을 한 뒤 소비자 반응이 더 좋아졌다. 지난해 이마트의 발피자 피자 매입 금액은 64만 달러(약 7억2000만 원)로 전년 대비 65% 늘었다.
PB는 최근 국내 기업뿐 아니라 글로벌 유통기업의 화두가 되고 있다. 점점 강력해지는 온라인몰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유통업체가 상품 주도권을 쥐고 시장을 공략해야 할 필요성이 커져서다. 2000년대 초반에는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매력으로 주목 받은 PB가 최근 치열한 품질 경쟁이 이뤄지는 이유기도 하다.
발피자는 원래 레스토랑이나 식품기업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사업모델로 시작했다. 현재 매출 1800만 유로(약 241억7000만 원)의 절반이 글로벌 유통기업 PB에서 나온다. 최근 발피자를 비롯한 이탈리아 식품기업은 미국 진출에 힘을 쏟는 중이다. 유럽에서 돌풍을 일으킨 PB 전문 슈퍼마켓 리들과 알디가 공격적인 미국 시장 진출에 일조하고 있다. 리들은 최근 미국에 첫 매장을 냈고, 알디는 34억 달러(약 3조8000억 원) 규모의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베인앤드컴퍼니는 6월 리들과 알디의 미국 진출 관련 보고서에서 “미국 유통업체는 여전히 ‘PB는 저임금 소비자만 사는 것’이라 착각하고 있지만 긴장해야 한다. 품질이 좋은 자체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유통업체들도 PB 비중을 확대하는 중이다. 대형마트, 백화점, 온라인 유통업체까지 PB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마트는 피코크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해외 소싱에 힘을 싣고 있다. 어설프게 맛을 재현하기보다 각 음식의 ‘고향’에서 직접 생산하겠다는 전략이다. 이탈리아, 프랑스, 태국, 베트남 등 6개국에서 43가지 음식이 피코크로 나와 있다. 대표 히트 상품인 티라미수도 이탈리아 공장에서 만든다.
김일환 피코크 상무는 “일반 제조사 브랜드를 넘어서는 프리미엄 식품 브랜드로 육성하는 게 목표라 글로벌 미식으로 상품 개발 범주를 확대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볼로냐=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