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팬들, 대표팀 성적부진에 실망→ 2002년 감동 못잊어 히딩크 거론
역대 대표팀 감독 중 히딩크 외에 누구도 4강 진출에 성공한 적이 없기에 그가 가장 뛰어나다고 믿을 수 있지만 이는 ‘결과 편향(outcome bias)’의 오류다. 대표팀 성적은 감독의 역량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변수에 의해 결정된다. 2002 월드컵 성공의 결정적 요인은 막대한 투자였을 수도 있고, 전 국민의 열광적인 성원이었을 수도 있으며, 단순히 운이 좋았을 수도 있다.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감독, 즉 역대 월드컵 주최국 대표팀의 감독들은 총 20회 대회에서 8명이 결승에 진출했으며 13명이 4강 이상 올랐다. 이 결과만 보면 히딩크 감독은 지극히 평범한 주최국 대표팀 감독이었다.
후광효과도 주의해야 한다. 2002 월드컵 이후 많은 언론매체가 히딩크 감독의 꿋꿋함과 소신을 첫 번째 성공요인으로 꼽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감독의 소신과 팀 성적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다. 꿋꿋하고 소신 강한 감독이 실패한 예도 수없이 많다. 흔히 성공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예외 없이 공정하고 결단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찬사는 후광효과 때문에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것이다. CEO가 공정하고 결단력 있어서 기업이 성공한 게 아니라 성공한 기업의 후광 덕분에 CEO가 공정하고 결단력 있어 보이는 것이다.
이런 욕구와 결과 편향, 후광효과가 결합해 CEO 신화가 만들어진다. 기업의 성공에 영향을 미친 수많은 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리더의 뛰어난 역량이 성공 비결이었다고 칭송하곤 한다. CEO와 그 주변인들이 이런 성공신화의 덫에 걸리면 잘 모르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위험이 크다. 또 잘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게 된다.
히딩크가 감독을 맡으면 한국이 2018 월드컵에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둘 거라는 믿음은 ‘2002 영웅 히딩크 신화’를 바탕으로 한다. 신화는 재미가 있고 우리의 힘든 마음을 달래줄 수 있지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진 못한다. 한국 축구나 기업 모두 그럴듯하고 흥미로운 신화만을 토대로 미래를 설계하고 있진 않은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ykim22@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