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영 산업부 차장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에 이런 문구가 큼지막하게 걸렸다. 외환위기 20년을 앞두고 한국 경제에 대한 경고음이 잇따르자 이를 의식해 올린 것으로 보인다. 이달 13일에는 김현철 대통령경제보좌관과 홍장표 대통령경제수석이 갑자기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우리 경제 기초는 튼튼하고 굳건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과연 그럴까. 실물 경제를 이끄는 기업인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청와대는 코스피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9월 수출이 61년 만에 최고액이라는 점을 들어 위기설을 일축했다. 하지만 이는 반도체 슈퍼 호황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누리는 데 따른 측면이 크다. 반도체 실적을 걷어내면 비슷한 맥락의 통계치가 나올지 자신할 수 없다. 자동차 산업은 국내외 매출 부진과 강성 노조 등에 시달린 지 오래고, 조선 해운 철강 건설 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 구조조정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이런 우려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외환위기를 호되게 겪은 한국 경제는 4대 부문 개혁에 힘입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잘 넘겼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한국은행이 펴낸 ‘성장잠재력 하락요인 분석: 생산 효율성을 중심으로’라는 보고서를 보면 2011년부터 2015년 한국의 생산효율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 중 29위로 거의 꼴찌였다. 발빠른 의사 결정과 튼튼한 제조업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버텼지만, 이후에는 주력 산업 성장이 더뎠고 제조업 위주의 산업 구조가 바뀌었는데도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영향이 크다.
청와대는 이번에 한국 경제가 튼튼하다고 강조하면서 실업자(8월 기준)가 100만 명을 돌파하고 청년실업률이 9.4%로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9년 이후 가장 나빴다는 점은 쏙 빼놓았다. 취업이 힘든 사람들은 자영업으로 몰려 자영업자가 OECD 회원국 중 4번째로 많지만 이들의 20%는 연간 1000만 원도 못 벌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가계소득을 늘려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소득 주도 성장을 내걸었지만 가계소득은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 원으로 올리고 통신·교통비를 1만∼2만 원 깎아준다고 해서 획기적으로 늘지 않는다. 결국은 일자리가 많이 나와야 한다.
요새 혁신을 이끄는 글로벌 기업들의 움직임은 꽤나 위협적이다. 단적인 예로 중국 알리바바는 해외 연구개발(R&D) 허브를 만들어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팅 등에 투자한다고 밝혔는데, 3년간 투자액이 150억 달러(약 17조 원)에 이른다. 미국 아마존은 첨단 기술로 일자리를 없앤다는 우려를 비웃기나 하듯 직원 5만 명을 한꺼번에 채용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 경제가 괜찮다고 공언하려면 국내에서도 거침없이 사업을 벌이는 기업들이 나와야 한다. 노인병에 걸린 기업들을 외면한 경제 진단은 안이할 수밖에 없다.
김유영 산업부 차장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