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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도서관]유하의 시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2’

입력 | 2017-10-16 15:52:00


1990년대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의 모습. 동아일보DB

‘압구정동은 체제가 만들어낸 욕망의 통조림공장이다.

국화빵기계다. 지하철 자동 개찰구다.

어디 한 번 그 투입구에 당신을 넣어보라. 당신의 와꾸를 디밀어보라. 예컨대 나를 포함한 소설가 박상우나 시인 함민복 같은 와꾸로는 당장은 곤란하다. 넣자마자 띠-소리와 함께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그 투입구에 와꾸를 맞추고 싶으면 우선 일 년 간 하루 십 킬로의

로드웍과 섀도 복싱 등 피눈물나는 하드 트레이닝으로 실버스타 스탤론이나 리차드 기어 같은 샤프한 이미지를 만들 것.

일단 기본 자세가 갖추어지면 세 겹 주름바지와, 니트, 주윤발 코트, 장군의 아들 중절모, 목걸이 등의 의류 악세사리 등을 구비할 것.

그 다음 미장원과 강력 무쓰를 이용한 소방차나 맥가이버 헤어스타일로 무장할 것.

그걸로 끝나나? 천만에, 스쿠프나 엑셀 GLsi의 핸들을 잡아야 그때 화룡점정이 이루어진다.

그 국화빵의 통과제의를 거쳐야만 비로소 압구정동 통조림 속으로 편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곳 어디를 둘러보라. 차림새의 빈부격차가 있는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욕망의 평등사회다 패션의 사회주의 낙원이다.

가는 곳마다 모델 탤런트 아닌 사람 없고 가는 곳마다 술과 고기가 넘쳐나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구나. 미국서 똥구루마 끌다 온 놈들도 여기선 재미 많이 보는 재미동포라 지화자, 봄날은 간다-’

-유하 시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2’에서


유하가 두 번째 시집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를 펴냈을 때는 1991년 4월이었다. 그 달 ‘강경대 폭행 치사사건’이 발생했다. 시위정국은 치열했으나 그것이 학생운동의 막바지였다. 1년 뒤 4월 ‘특종 TV연예’를 통해 ‘서태지와 아이들’이 ‘난 알아요’로 데뷔하며 ‘신세대 문화’의 시대가 열렸다. 더 이상 ‘우리’가 아닌, 서태지의 노래처럼 ‘나’의 시대가 온 것이다.

‘바람부는 날…’ 2편에는 ‘욕망의 통조림 또는 묘지’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시인은 압구정동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찍어낸 듯 비슷하다고 묘사하는 데 시의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그는 자신과 동료 문인들의 ‘와꾸’를 희화화하면서, ‘압구정동 와꾸’가 되려면 피나는 노력을 들여 몸을 만들어야 한다고 비꼰다. 의상도 챙기고 헤어스타일, 차도 갖춰야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알지도 못하겠지만 소방차(가수들이다)나 맥가이버 스타일에 스쿠프나 액셀로! 그래야 가는 데마다 넘쳐나는 ‘모델 탤런트’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시인 유하는 2000년대 이후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했다. 동아일보DB


이 국화빵 통과제의가 중요한 것은 이곳이 ‘차림새의 빈부격차가 없는 무릉도원’이어서다. 그가 시 후반부에서 읊듯 ‘글쟁이와 무용수의 심리적 거리는 인사동과 압구정동의 실제 거리와 비례’하지만, 압구정동 안은 ‘평등사회’다. 그곳에서 모든 욕망은 고르다.

유하 자신이 중학교 때 강북에서 강남으로 전학 와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욕망의 도가니 강남을 겪었다. ‘바람부는 날…’에선 그 체험의 감성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IMF가 오기 직전까지 폭발했던, 압구정동으로 상징되는 화려한 소비문화 속 욕망. 시인은 그것을 일찍이 간파한 것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