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사장 전통시장 진출기]<12·끝> 진주 중앙지하도상가 황금상점
경남 진주시 중앙지하도상가 청년몰인 ‘황금상점’에서 만난 청년상인 3인. 왼쪽 사진부터 김아람, 최대수, 하솔 씨. 자기들을 ‘운명공동체’라 칭한 3인은 “단순 쇼핑 공간이 아니라 문화 공간인 ‘황금상점’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진주=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경남 진주시의 중앙지하도상가를 찾으면 이 같은 간판이 붙어 있다. 황금처럼 빛나는 20인의 청년이 만든 문화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은 이곳은 여느 지하상가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20인의 청년은 24세부터 39세까지 연령이 다양하다. 파는 품목도 마찬가지다. 청바지를 ‘직접 찢어주는’ 상점부터 슈링크아트(열을 가하면 줄어드는 플라스틱 용지를 활용한 수공예) 같은 생소한 공예기술을 가르쳐주는 공방도 있다. 매년 진주에서 열리는 유등축제의 대표 먹거리인 ‘유등빵’을 판매하는 청년도 있다. 황금처럼 반짝이는 청년들이 꿈을 키워가는 놀이터, 전주 지하도상가를 지난달 29일 찾았다.
○ “좋아해서 시작했어요”…취미 살려 일자리 찾은 ‘성공한 덕후’ 3인
김 씨의 공방을 찾는 손님의 연령대는 그 폭이 넓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도 그의 손님이다. 김 씨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방과후수업으로 공방을 찾는 경우가 꽤 많다”며 “평일은 주부, 대학생 수업 위주로 하고 주말엔 아이들 체험 교실처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 가게 맞은편에는 ‘청바지를 기호대로 찢어드립니다’라는 도발적인 문구를 내건 가게가 있다. ‘찢어진 청바지’를 좋아하는 청년은 청바지 가게 사장이 됐다. 최대수 씨(30)다. 스무 살 때부터 청바지 브랜드 상점에서 일한 최 씨는 ‘청바지 찢어주는 가게’를 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브랜드 청바지는 디자인 문제 때문에 함부로 손댈 수가 없잖아요. 리폼을 해주는 곳도 거의 없고…. 청바지를 찢어 입는 걸 좋아하다 보니 청바지를 보면서 ‘찢으면 훨씬 예쁠 텐데’ 하며 답답해했어요.”
최 씨의 가게에서 청바지를 사면 그 자리에서 원하는 대로 찢거나 염색을 해준다. 손님이 기존에 갖고 있는 청바지를 가져오면 ‘고객 체형’에 따라 찢어주기도 한다. ‘청바지 찢기’에 관한 한 최 씨만의 철학이 있다. “청바지도 잘 찢어야 해요. 공장에서 일괄적으로 찢은 청바지는 입는 사람 체형에 따라 모양이 안 예쁘거든요.” 최 씨에 따르면 무릎이나 허벅지 등 찢어진 청바지를 이용해 어느 부위를 노출하느냐에 따라 멋스러움도 달라진다. 최 씨는 “구제 느낌 나게 때를 묻히거나 페인팅을 해드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틈새시장’을 노린 최 씨의 가게는 입소문을 꽤 탔다. 최 씨는 “고객이 고객을 데리고 온다”며 웃었다. 진주뿐 아니라 창원, 김해 등 경남지역에서 직접 “청바지 찢어달라”며 찾아오는 손님도 적잖다고 한다.
취업준비생이던 여대생은 ‘취업준비 스트레스 해소’ 목적으로 향초를 만들었다. 대학에서 프랑스문화학을 배웠지만 전공엔 관심이 없었다. 하솔 씨(25·여)는 “졸업하고 진로 고민을 하던 시기였다”며 “갈피를 잡지 못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중에 취미로 시작하게 됐는데 만드는 게 너무 즐거워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하 씨의 이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진주에서 청년상인 사업을 하는데 취업에 큰 뜻이 없으면 도전해보라는 것. 가족들의 격려에 하 씨는 창업에 도전하기로 했다. 하 씨는 “언젠가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인데 시기가 앞당겨졌다”고 말했다.
하 씨의 다음 꿈은 ‘조향(調香)’이다. 남들이 만든 향기를 향초에 담을 뿐 아니라 직접 향기까지 만들겠다는 것이다. “제 가게의 콘셉트가 ‘빛과 향기를 파는 곳’이거든요. 초를 만들어서 ‘빛’은 완성이 됐으니 이젠 ‘향기’도 만들 예정입니다.”
○ 경쟁 아닌 윈윈…청년상인 20인 “우리는 운명공동체”
진주시는 △진주 중앙지하도상가 활성화 △청년 일자리 창출 등 두 가지 과제를 잡기 위해 ‘청년몰’을 조성하기로 했다. “청년이 창업해야 산다”는 슬로건 아래 각 지자체에서 불었던 ‘청년몰 조성 붐’의 일환이기도 하다. 하지만 진주시의 접근 방식은 특별했다. 지난해 10월 예비 청년상인 20명을 뽑았다. 이들을 대상으로 6, 7개월간 ‘혹독한 트레이닝’을 했다. 고객 응대 방식 교육부터 아이템 선정 피드백은 기본이었다. 서울, 부산, 전주, 수원, 강원도 등 전국의 청년몰을 견학했다. 특성화고등학교와 연계해 창업과정도 함께 연구했다. 6개월의 훈련과정을 거쳤던 청년상인 3인은 이 기간을 “황금 같은 시기”였다고 입을 모았다. 최 씨는 “교육을 6, 7개월간 같이 받다 보니 거의 가족이 됐다”며 “‘운명공동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 이민권 소상공인시장진흥公 이사 “상인끼리 화합 잘돼… 노년층 고객 끌 상품 개발해야” ▼
이민권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상임이사(사진)는 진주 중앙지하도상가 ‘황금상점’의 청년 상인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이 상임이사는 “진주시는 노인 인구가 많은 지역인 만큼 노년층 고객 공략이 필요하다”며 “실버층이 선호하는 건강 관련 상품이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뿐만 아니라 노년층 고객의 젊은 시절 향수를 자극할 수 있는 추억의 상품을 개발하는 것도 추천했다. 현재 진주 중앙지하도상가의 주 고객은 인근 직장인과 10∼30대 청년이다. 이들이 주로 찾는 저녁, 주말시간이 아닌 평일 오전, 오후 시간대를 수익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도 노년층 고객의 확보는 필요하다.
‘황금상점’에는 체험형 점포가 많은 편이다. 물건을 구입하기보다 ‘체험’을 하기 위해 상점을 찾는 고객이 많은 데 비해 공간은 협소하다. 이 상임이사는 “주말에 대기하는 고객이 많은데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예약제를 도입하거나 공동 체험 장소를 만들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줄 서는 점포의 장점이 지명도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기다리다 포기하는 고객 이탈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어서다.
‘운명공동체’처럼 상인끼리 화합하는 모습은 큰 장점으로 꼽았다. 몰인몰(mall in mall) 형태의 지하상가에서는 기존 상인과 새 상인이 화합하지 못하고 ‘따로따로’인 경우가 적지 않지만 황금상점은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로 황금상점의 청년상인 20인은 자체 개발한 ‘황금열쇠를 찾아라’ 증강현실 게임 애플리케이션으로 공동 이벤트를 실시하기도 했다. 이 상임이사는 “‘따로 또 같이’라는 슬로건으로 상호 협력해 공동이벤트를 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며 “‘황금상점’이라는 브랜드를 활용해 캐릭터를 개발하는 등 새로운 마케팅도 추진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진주=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