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에서 공간이 본질적인 것처럼, 도시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결코 몇 낱 기념비적 건물이 아니라 그 건물들로 둘러싸인 공공영역이다.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승효상·돌베개·2016년)
주말에 카메라를 들고 경복궁 옆 서촌마을을 찾았다. 골목에 자리 잡은 오래된 책방과 명소, 옛날 가옥들은 경복궁 돌담과 어울려 고즈넉한 정취를 자아냈다. 예전에는 반대편에 있는 삼청동도 종종 갔지만 지금은 안 간다. 그곳에 자리 잡고 있던 친숙한 풍경들은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상점, 유명 커피브랜드에서 만든 대형 카페로 대체된 지 오래다. 역사와 아름다움, 공공성은 사라지고 영악한 자본주의의 건축물이 생겨났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이전 안을 그리고 있는 승효상 씨는 건축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건축가다. 그는 문 대통령과 부산 경남고를 함께 다녔으며 당시 문과 수재는 문재인, 이과 수재는 승효상이라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이 책에는 원래의 기능과 목적을 잃고 변질된 요즘 건축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건축은 원래 사람을 보호하고 안정된 생활을 해 나갈 수 있도록 삶의 기반 역할을 해야 하지만 요즘은 아니다. 일부 정치인에게 건축은 임기 내 치적을 자랑하는 도구이고, 건물주에게 건축은 임대료 상승으로 차익을 챙기는 부 증식의 수단이다. 그러한 건축물들의 공통점은 거대하고, 빈 공간을 남기지 않고, 주변의 자연, 환경, 역사와 단절됐다는 것이다. 서울시청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건축가들 사이에서는 대표적인 예로 통한다. 이 건물이 서울의 어떤 역사와 의미를 담았는지, 동대문의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 보는 사람들은 알 수가 없다.
승 씨는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사용하는 건축물이 아니라 도시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빈터나 길가에 도시의 본질이 있다”고 썼다. 사람이 어떤 건물을 짓느냐에 따라 그 안,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과 삶도 변한다. 사람을 위한 건축, 사람을 위한 도시가 늘었으면 한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