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 문화부장
요즘 인터넷에서 고구마는 불협화음으로 꼬이는 상황을, 반대로 사이다는 시원하게 풀릴 때를 의미한다고 한다. 인터넷 고구마가 아닌 실제 고구마가 화두가 된 것은 집 앞 공터에 있는 어머니의 텃밭 때문이었다. 채소와 고구마, 감자 등을 심는 그 밭은 노모의 소일거리이자 선물 주머니였다. 최근 급격하게 허리와 무릎이 나빠진 어머니는 내심 예닐곱 이랑 심은 고구마를 캘 적임자로 추석에 오는 아들 손자를 꼽은 모양이다.
하지만 역시 무릎이 좋지 않은 아들의 대꾸는 퉁명스러웠다. “오자마자 웬 고구마를 캐냐.” 고구마성 발언이 나오자 불편한 얘기가 오갔다. 결국 추석 당일 꼭두새벽부터 호미를 들고 나가는 것으로 상황은 수습됐지만 1시간 반 동안 두 이랑 캐는 데 그쳤다. 이곳저곳 늘어진 줄기를 걷고, 호미로 고구마에 상처 내지 않고 캐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해 전보다 더 굽은 노모의 허리를 보며 “고구마 먹지도 않는다. 텃밭 일 그만두라”고 구시렁거렸지만 텃밭의 최대 수혜자는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 발행하는 1달러 동전의 뒷면에는 미국 원주민 여인과 함께 옥수수, 호박, 덩굴성 콩, 이렇게 세 종류의 작물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세 종류의 작물은 미국에서는 흔히 ‘스리 시스터스’, 세 자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식물들이지요. … 혼자가 아니라 셋이 함께 심겨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식물입니다.”
문외한의 눈에 세 자매의 사연은 무릎을 칠 수밖에 없는 자연의 과학이다. 키가 큰 옥수수는 콩과 호박의 지지대가 되면서 비바람을 막아주고, 콩은 공기 중 질소를 빨아들인 뒤 뿌리로 보내 옥수수와 호박에 비료를 제공하고, 호박은 큰 잎으로 땅을 덮어 건조함을 막거나 추울 때 보온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수분을 도와주는 벌이 등장하면 네 자매다. 이 동전이 2009년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첫 임기가 시작될 무렵 공존과 화합의 상징으로 발행된 것도 의미심장하다.
최근 시작된 문재인 정부의 첫 국정감사에서 파열음이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적폐 청산 또는 과거사 청산을 둘러싼 갈등이 주요한 원인이다. 여당은 박근혜-이명박 보수정권 9년의 적폐 청산을 벼르고 있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문 정부를 ‘신(新)적폐’, 노무현 김대중 정부를 ‘원조 적폐’로 규정하며 되치기에 나섰다.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양측의 대치로 국감장 곳곳에서 고성이 오가며 파행도 이어지고 있다.
‘고구마 파동’이 가까스로 수습되자 추석 아침상 분위기는 여느 집과 비슷한 분위기로 돌아갔다. 큰 걱정을 던 노모의 말이다. “문제가 있다고 해서 정부랑 대통령이랑 싹 바꾸었는데 왜 밤낮으로 싸우기만 하냐. 이제 그만 싸울 때도 되지 않았냐. 고구마 줄기처럼 계속 나오는 과거만 파서 어쩌겠다는 건지….”
문재인 대통령, 그 정원을 가꾸는 첫 번째 정원사가 되어야 한다.
김갑식 문화부장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