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리듬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10년 후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도움으로 시프르는 동굴에서 6개월 동안 지내는 실험에도 착수했다. 이번엔 머리에 전극을 부착하고 심장과, 뇌, 근육 활동 등을 체크했다. 79일이 지나자 자살을 생각할 만큼 정신적 고통이 컸다. 이 동굴 실험의 첫 달 동안 수면 등 신체활동의 주기는 24시간을 조금 넘겼다. 그러나 이후 시프르의 생체시계 리듬은 18시간에서 52시간까지 다양하게 변했다.
최근 발표된 노벨 의학생리학상은 생체시계 유전자를 밝혀낸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세포 내 특정 유전자들은 끊임없이 단백질을 생성하는데 여기서 24시간 생체시계 리듬이 만들어진다. 특히 생체시계 리듬은 호르몬 분비와 소화 기능, 치료제 효능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환자의 생체시계 리듬을 파악하여 항암 치료에 필요한 약물 투여 시점 등을 특정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누군가는 오래 살 수 있다. 장수와 단명의 차이는 생체시계의 리듬이 제대로 작동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주기 리듬(Circadian rhythm)’은 라틴어로 ‘약 하루’를 뜻한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 주기는 일주기 리듬을 만들어낸다. 25억 년 훨씬 전에 등장한 시아노박테리아도 생체시계를 지니고 있었다. 생명체의 일주기는 속도 조정자인 진동자에 의해 유발되는데 남세균, 균류, 곤충, 생쥐 등 지구 내 모든 생명체가 갖고 있다.
올해 한가위 연휴는 가장 길었다. 전 국민이 낮과 밤, 노동과 휴식, 시차와 공간적 변화 등으로 생체시계 리듬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렇듯 현대인들은 의도치 않게 생체시계 리듬에 안 좋은 영향을 받는다. 몸에 탈이 나고 소화가 안 되며, 잠을 잘 못 자는 이유는 전부 역전된 생활습관 때문이다.
생체시계 리듬은 항상성의 다른 말이다. 동굴에 있던 시프르는 항상성이 흐트러졌다. 그는 매일 120까지 세어 보았다. 1초에 하나씩 세어서 처음엔 2분이 걸렸지만 갈수록 길어져 나중엔 5분이나 걸렸다. 항상성이 깨지면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1979년, 한 원자로의 조정실에서 근로자들의 실수로 방사능이 유출된다. 오전 4시에 밸브가 열려 있음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질병이란 수면주기, 식습관 등 항상성이 깨지면서 발생한다. 생체시계는 수면과 체온 대사 같은 신체의 필수적인 기능을 조율한다. 인간의 수명에 편차가 생기는 것은 바로 이 생체시계 리듬을 잘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형태의 생체시계 작동 원리를 살펴보자. CLK(clock)라고 불리는 단백질은 낮 동안 뇌의 SCN(뇌 시상하부의 시신경교차상핵)에 축적된다. CLK는 우리를 깨어 있도록 하는 유전자들을 활성화함과 동시에 PER(period)라는 또 다른 단백질을 생성한다. PER가 충분히 축적되면 CLK를 만드는 유전자가 비활성화되어 우리는 잠들게 된다. 잠들면 CLK가 줄고, PER도 따라서 줄어든다. 낮의 CLK와 밤의 PER 증감의 시소 효과인 것이다. 물론 이 두 단백질 이외에 다른 단백질들도 연관되어 생체시계를 작동시킨다. SCN은 빛이나 음식, 소리, 기온에도 영향을 받는다. 일주기 리듬의 속도 조절 총괄은 SCN에서 관장한다.
인간이 어둠 속에서 잠을 잘 자는 이유는 생체시계의 리듬 때문이다. 빛이 없어도 식물은 잎의 여닫음을 잊지 않는다. 균류와 빵곰팡이의 생장과 포자 방출 패턴, 초파리 번데기 부화 시기, 설치류 활동주기, 광합성과 호흡 같은 대사과정 등도 생체시계에 따른 움직임으로 알려져 있다. 재밌는 건 사람의 일주기 리듬이 24시간을 조금 넘겨서 길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빛의 양과 빛의 공급 시간을 조절해 시간을 알아채지 못하게 할 경우 생체시계의 리듬은 24시간을 넘기게 된다.
김재호 과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