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前대통령, 사실상 재판 거부
안경 쓴 채 다시 구치소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16일 법정에서 자신의 구속을 연장한 재판부를 신뢰할 수 없다고 발언한 뒤 서울중앙지법을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쓴 안경을 벗지 않은 채 서울구치소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채널A 화면 캡처
박 전 대통령이 16일 법정에서 사실상 재판 거부 선언을 하자 그의 탄핵 심판 변호인이었던 황성욱 변호사(42)는 이렇게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이 법정 발언을 통해 자신의 구속과 재판을 ‘법치의 이름으로 한 정치 보복’으로 규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날 집단 사임한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새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법원이 국선 변호인을 지정하더라도 접견을 거부할 계획이다. 박 전 대통령 1심 재판의 파행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 전 대통령이 이날 법정에서 재판부에 대한 불신을 강조하며 “향후 재판은 재판부 뜻에 맡기겠다”고 한 의미는 재판 출석과 변론 등 어떤 재판 절차도 밟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박 전 대통령 측 인사는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에서 스스로 알아서 견디는 시기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법조계 일부에선 박 전 대통령이 ‘정치 보복’에 희생당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단식’을 할 수 있다는 전망도 하고 있다. ‘변호인단 전원 사임→재판 거부→단식’ 순으로 강도를 높이며 자신의 구속과 재판의 부당성을 알릴 복안이라는 것이다. 검찰의 한 간부는 “만약 박 전 대통령이 재판을 끝내 거부하고 단식을 할 경우 재판부가 엄청난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엔 박 전 대통령과 변호인단의 ‘구속 연장=1심 선고 유죄’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재판부가 구속 연장 결정을 한 것은 유죄 선고를 할 심증을 굳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둔 듯 이날 법정에서 재판장인 김세윤 부장판사는 “추가 영장 발부가 유죄를 미리 판단한 결과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만약 박 전 대통령이 나중에 생각을 바꿔 국선 변호인 선임을 받아들이고 재판에 응할 경우 1심 재판 선고가 올해 말을 넘길 가능성이 높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6개월 넘게 진행돼 온 방대한 재판 기록을 국선 변호인이 얼마만큼 이해하고 실제로 변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재판이 장기 지연되면 박 전 대통령의 연장 구속 기한인 내년 4월 16일 밤 12시까지 1심 선고가 내려지지 못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재판부는 다시 박 전 대통령 구속 연장 여부를 결정하게 될 수 있다.
○ 검찰, ‘적폐 청산’ 수사에 부담될까 촉각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 사임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재판부가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적법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것인데 변호인단이 사임한 것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지방검찰청의 부장검사는 “최근 야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640만 달러 수수’ 의혹 사건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 일가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게 검찰로서는 큰 부담”이라며 “박 전 대통령의 행보와 맞물려 검찰이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호재 hoho@donga.com·권오혁·황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