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前대통령, 사실상 재판 거부]박근혜 前대통령 발언 정치권 파장
한국당 의원들 ‘文정부 무능심판’ 16일 금융위원회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노트북 컴퓨터에 ‘문재인 정부 무능심판’ 구호가 적힌 종이를 부착한 채 질의하고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항의하면서 국감이 한 시간 반가량 정회됐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 ‘정치 보복’ 주장하고 나선 전직 대통령
박 전 대통령은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한다”며 자신을 ‘정치 보복’의 희생자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단순히 추가 구속영장 발부에 대한 불만, 재판에 대한 불신 차원을 넘어 옥중에서라도 정치의 한복판에 다서 서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그런 점에서 변호인단 전원 사퇴는 당연한 수순일 수 있다. 변호인단이 집단 사퇴하고 박 전 대통령을 혼자 남겨두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지지층을 결집하고,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출당 분위기에도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수석대변인은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의 마음에 실망과 분노만을 안겨주고 말았다. 국민에 대한 사죄의 마음이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김철근 대변인도 “국정농단의 최정점에 있는 박 전 대통령의 ‘정치 보복’ 운운은 적반하장”이라고 말했다. 바른정당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박 전 대통령이 피고인 신분으로 방어권 차원에서 본인의 심경을 얘기한 것으로 정치권에서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했다.
○ 홍준표 “방미 전 출당 문제 정리한다”
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끊고 바른정당과의 통합 등 새 출발을 모색하려던 한국당으로선 난감한 형국이 됐다. 한국당은 혁신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이르면 18일, 늦어도 홍준표 대표가 미국을 방문하기 전인 23일까지 윤리위원회를 열어 박 전 대통령에게 탈당 권유를 할 예정이었다. 전희경 대변인은 “어느 국민이 정권교체까지 된 마당에 증거 인멸을 이유로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연장을 한 것에 납득하겠느냐. 사법부의 정치화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을 더욱 강하게 한다”고 말했지만 2차 구속기한 연장에 초점이 맞춰진 구두 논평이었다. 한국당 지도부는 소속 의원들에게도 박 전 대통령 발언에 대한 입장 표명을 가급적 삼가 달라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친박(친박근혜)계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김태흠 최고위원은 “지금 출당을 밀어붙이면 당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최경환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내놓을지 몰랐다. (당이) 출당에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기준 의원도 “법정구속 이후 최초의 입장 표명이라 (전통 지지층에) 호소력이 상당할 것”이라고 했다. 친박계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옥중정치에 나선나면 사정 변경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감도 남아있다.
이에 홍 대표는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방미 전에 (박 전 대통령 출당 문제를) 정리할 것”이라며 “박 전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자신이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는 것 아니냐. 당으로서는 오히려 부담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류석춘 혁신위원장도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역할이다. 당이 이제 와서 그 정치적 책임을 면해줄 순 없다”고 말했다.
○ 보수 통합 ‘숨고르기’
한국당과 바른정당 간 보수 통합 논의는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바른정당 통합파 의원들은 이날 “국정감사 기간에는 국회의원으로서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자”며 11월로 통합 논의를 미루기로 했다. 당초 이들은 이번 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출당 조치가 이뤄지면 11·13전당대회 후보 등록일인 26일 이전 집단 탈당도 불사하겠다는 태세였다.
박 전 대통령의 예기치 못한 메시지가 나오면서 통합파 의원들은 상황의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의 ‘보수야당 통합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시간 조정의 문제일 뿐 통합을 해야 한다는 절대 명제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다만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이 나온 상황에서 섣불리 대응하면 (통합 과정에) 부작용이 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수영 gaea@donga.com·송찬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