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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맛’ ‘I Got a Boy’… 케이팝 만드는 아바의 아이들

입력 | 2017-10-17 03:00:00

한국 시장에 뛰어든 스웨덴 작곡가들




스톡홀름 시내 ‘코스모스 뮤직’ 사무실에서 만난 ‘헬로’의 공동작곡가 마리아 마르쿠스. 컴퓨터에 조용필의 영상을 띄워 들어보였다. 이진섭 씨 제공

《음악 수출 규모 세계 3위 국가. 스웨덴은 지금 아바의 빛바랜 영광만이 나부끼는 북유럽의 땅이 아니다.

인구 990만의 소국이지만 전 세계 음악 차트를 스웨덴 작곡가의 노래가 수놓는다. 해외에서 한국 노래 작곡가가 가장 많은 스톡홀름은 케이팝의 ‘제2의 고향’이다.》
 

3, 4년 전 스웨덴 음악계에서 케이팝의 존재는 요즘 말로 ‘힙스터’였다. 보아, 동방신기 등 케이팝이 상당한 저작권료를 가져다주는 효자 상품이라는 인식이 젊은 작곡가들 사이에 생겨난 것이다. 이제는 스웨덴 음악계 중견들까지 케이팝을 주목하고 있다.

○ 아바의 후손들, 왜 케이팝을 만드나

최근 스톡홀름 교외에서 찾은 페르닐라 스반스트룀 ‘더 케널(The Kennel)’ 공동대표의 집무실은 마치 서울의 음반 제작사 같았다. 소녀시대, 레드벨벳, 엑소의 음반이 벽면 가득 꽂혀 있었다. 가장 중요한 자리엔 소녀시대의 빌보드 월드 앨범 차트 1위 기념 포스터가 걸려 있다. 스반스트룀은 “소녀시대의 ‘I Got a Boy’는 우리 회사 최대의 성과였다. 레드벨벳의 ‘빨간 맛’이 그 영광을 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곳 스튜디오에서 ‘빨간 맛’을 만들어낸 현지 작곡 듀오 ‘시저 앤드 루이’를 “내 새끼들”이라 부르며 껴안았다.

2009년 창립한 케널은 스웨덴의 유명 작곡가 사무소다. 미국 영국 독일 호주 일본 등의 음악시장에 팝송을 만들어 판다. 이곳 소속 작곡가 27명 중 10명이 케이팝을 만든다. 노래 납품의 절반 가까이를 케이팝 시장에 집중한 결과 여러 다른 나라로 사업 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 CD와 음원 스트리밍이 모두 잘돼 수익률이 높고 소셜미디어를 통한 해외 파급효과가 큰 점이 케이팝의 매력이다.

북유럽 작곡가들이 머나먼 나라 한국 시장에 투신하는 이유는 이윤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스릴 넘치고 흥미로운 작업이 케이팝 작곡이라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스톡홀름의 ‘코스모스 뮤직’ 스튜디오에서 만난 작곡가 마리아 마르쿠스는 조용필의 ‘헬로’, 레드벨벳의 ‘7월 7일’을 만든 이다. 일본 가수 아무로 나미에의 곡을 만들다가 케이팝에 눈을 떴다고 했다. 마르쿠스는 “재즈피아니스트 출신이어서 복잡한 화성(和聲)을 즐긴다. 제이팝은 두세 개의 코드로 승부를 보는 경우가 많은 반면 케이팝은 훨씬 풍부한 색채의 화성을 용인해 작업이 즐겁다”고 했다. 페오 닐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한국의 A&R(아티스트 앤드 레퍼토리) 담당자들은 웬만한 작곡가를 능가할 정도로 음악지식이 해박해 창의적 협업이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 “케이팝은 여생의 목표”

페르닐라 스반스트룀 ‘더 케널’ 공동대표(가운데)와 작곡 듀오 ‘시저 앤드 루이’의 루드비그 린델(왼쪽)과 다니엘 카에사르(시저). 이진섭 씨 제공

올해 문을 연 작곡가 회사 ‘에코 뮤직 라이츠’는 북유럽 음악계 거물 펠레 리델을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해 최근 화제가 됐다. 전 유니버설 뮤직 유럽 부사장인 리델은 영국과 유럽의 유명 팝스타들을 양성한 A&R의 전설적 귀재다. 50대 중반인 리델은 “미국, 영국 차트만 들여다보는 답답한 대기업 생활에 신물이 나 사표를 던졌다”면서 “SM 등 한국 음반사들은 정보기술 시대에 큰 파급력을 지녔다. 이 미래 시장에 훌륭한 북유럽 작곡가들의 곡을 납품하는 것이 남은 제2의 인생 목표”라며 웃었다.

현지 관계자들은 스웨덴 작곡가들이 미국, 영국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높은 경쟁력을 보이는 데 대해 멜로디 중시 경향, 정보기술 인프라와 감수성, 음악 공교육의 높은 질, 영어 구사능력과 소통 능력을 꼽았다. 헬렌 매클로플린 소니뮤직 스웨덴 A&R 총괄부사장은 “아바와 맥스 마틴(에이스 오브 베이스, 아델, 아리아나 그란데 프로듀서)의 해외 진출이 스웨덴 작곡가들에게 희망의 문을 열어줬다. 다음 가능성을 아시아와 한국 시장에서 보고 있다”고 했다.

스톡홀름=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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