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1] 유관순과 안네의 어린 시절 첫번째 사진은 이화학당 시절의 유관순(뒷줄 오른쪽). 두번째 사진은 몬테소리 초등학교 교실에서의 안네.
유관순은 1902년 충남 천안에서 유중권 씨와 이소제 여사 사이에서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유중권은 감리교 신자로 학교를 세운 계몽 운동가였습니다. 유관순은 1914년경부터 공주 영명학교를 다녔고, 이후 감리교 선교사의 소개로 1916년 이화학당 보통과에 편입했습니다. 교과 공부, 성경, 체조, 재봉, 수예 등을 배웠고 주말에는 흰 저고리와 회색 어깨허리치마를 입고 정동교회에 갔습니다.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힘들었겠지만, 즐거운 학창 생활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림2] 안네의 일기 원본.
그런 두 소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알고 있지요. 두 소녀의 죽음에 앞서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한 가지 더 하려고 합니다. 1917년 유관순(15세)에게는 정말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사촌인 유경석과 노마리아 사이에서 조카 유제경이 태어난 것입니다. 유관순은 태어난 조카 유제경에게 손수 뜨개질한 모자를 선물합니다.[그림2] 유제경은 이 모자를 어른들로부터 받아 85년간 간직해 오다 유관순 탄신 100주년 때 유관순연구소에 기증했습니다.
[그림2] 유관순이 뜨개질한 모자.
안네의 가슴 아픈 이야기는 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발견됩니다. 1944년 7월 21일 안네는 자신의 일기장에 “오는 10월에는 학교의 책상 앞에 앉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기뻐 조리 있게 말할 수도 없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1944년 8월 1일 마지막 일기장에는 자신의 외면과 내면에 존재하는 두 가지 서로 반대되는 모습 때문에 부끄러워합니다. 명랑하고 고집도 있고 당돌한 자아와 얌전하고 맑고 진지한 자아가 서로 싸우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안네를 응원하고 싶습니다.
○ 유관순과 안네의 저항이 우리에게 준 선물
유관순의 꿈을 빼앗아간 거대한 시대의 흐름을 우리는 제국주의라고 부르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안네와 같은 유대인을 학살한 시대의 흐름을 전체주의라고 부릅니다.
두 소녀의 행복,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파괴한 제국주의와 전체주의에 두 소녀는 어떻게 저항했습니까. 유관순은 3·1운동 시기 서울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경무 총감부에 붙잡혔다 풀려났습니다.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지자 천안에 내려가 4월 1일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이후 체포되어 1920년 9월 28일 서대문 감옥에서 순국했습니다. 그리고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가 이태원 지역이 개발되면서 무덤이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젊은이와 외국인의 거리지만, 유관순의 무덤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일제강점기 역사책의 순서를 잘 보면, 대부분 3·1운동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나옵니다. 당시 임시 의정원은 헌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 임시 헌장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유관순과 우리 민족의 저항이 상하이 임시정부와 헌법의 제정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이태원 유관순 추모비(첫번째 사진)와 안네의 묘.
가슴 아픈 역사이지만, 그들의 희생과 저항이 있었기에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친구들에게 오늘 신문 기사를 소개해 주세요. 그리고 서로 두 가지 문제를 두고 이야기해 보세요. 첫째, 오늘날에도 안네와 유관순이 경험했던 것처럼 국가와 사회가 개인의 행복을 지켜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한 사례를 이야기해 봅시다. 둘째,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헌법이 만들어진다면 1조 1항에 어떤 내용을 담고 싶은가요.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해 보세요. 여러분들의 생각과 소망이 모여 새로운 헌법이 만들어집니다.
이환병 서울 용산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