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시간 사용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아이가 공책에 뭔가 쓰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하고 엄마는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밖으로 나갔다. 쓰레기를 정리하고 들어오니 아이가 거실을 배회하고 있다. “숙제 다 했어?” 아이는 “아니, 그게 내일 준비물로 풀을 가져가야 하는데, 가방 보니 없어서요. 엄마, 풀 어디 있어요?”라고 한다. 다시 한숨을 푹푹 쉬며 얼른 풀을 찾아 쥐여준다. 방으로 들어가던 아이는 “아” 하면서 다시 주방으로 간다. “야, 또 어디 가?” “물 좀 마시려고요.” 엄마는 부글부글하는 속을 달래며 아이에게 물을 준다. 숙제를 시작한 지 어느덧 1시간, 공책에는 달랑 두 줄만 적혀 있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주의력’과 관련이 크다. 주의력 발달이 미숙하면 과제가 주어졌을 때 우선순위를 정해 재빨리 해내기가 힘들다. 우선순위가 잘못되기도 하고, 시작하기 전 워밍업이 지나치게 길어지기도 한다. 시작한 이후 끝날 때까지 주의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주의력이 세밀하게 발달하는 시기는 초등기와 중등기이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같은 속도로 발달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 빠르기도 하고 늦기도 한다. 초등기에는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아이들이 민철이와 같은 주의력 문제를 보인다. 이럴 때는 훈련을 통해 주의력이 발달하도록 도우면 된다.
이런 아이들은 책상 앞에 큰 시계를 걸어주고, 중간에 자주 시간을 확인하게 한다. 시간에 대한 감이 생기게 하기 위해서다. 숙제를 하기 전, 짧게 계획을 세우게도 한다. “네 생각에는 얼마나 걸릴 것 같니?” 묻고, 아이가 “30분이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라고 하면, 시계를 가리키면서 “그래, 한번 해봐. 30분이면 시곗바늘이 이렇게 될 때까지야” 하고 주지시킨다. 숙제가 두 장이라면, 한 장은 15분 정도에는 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시작이 늦어지는 것 같으면, “자! 시간 봐” 하고 시간을 직접 눈으로 확인시킨다. 아이가 중간에 왔다 갔다 하거나 벌떡 일어날 때마다 “시간 한번 확인해봐” 하고 말해준다. 아이는 “어, 5분밖에 안 지났네” 하면서 도로 앉을 수 있다.
아이가 30분은 걸릴 숙제를 10분 정도 걸릴 것 같다고 할 수도 있다. “엄마 생각에는 안 될 것 같은데, 일단 해봐”라고 해준다. 아이가 정말 10분 안에 끝내면, “너 굉장히 빠르구나”라고 칭찬해준다. 끝내지 못했을 때는, “사실 무리였어. 네가 잘하긴 하는데, 시간을 너무 짧게 잡았어. 이 분량은 30분은 걸릴 것 같다”라고 알려준다. 30분에 끝날 것을 한 시간이나 걸렸을 때는 “좀 빨리 할 필요는 있겠다. 어떻게 하면 좀 빨리 할 수 있을까?”라고 물어본다. 아이들은 의외로 “준비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책상에 빨리 앉아야 하는데…” 등 나름대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책을 잘 내놓는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을 가르치려면 이런 훈련을 엄청나게 많이 해야 한다. 이 훈련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보다 ‘부모’다. 아이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으면 속이 터질 것이다. 아무리 속이 터지고 끊임없이 반복되어도 화를 내서는 안 된다. 화를 내고 비난하면 아이의 기분이 상해 훈련에 성공할 수 없다. 아이는 부모를 화나게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다. 주의력 뇌가 미숙해서 일어나는 행동이다. 혼을 낸다고 뇌는 하루아침에 발달하지 않는다. 뇌를 발달시키려면 정서가 편안한 상태에서 꾸준히 훈련을 해야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