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어느 고속도로 휴게소를 가도 비슷한 어묵바와 떡볶이, 호두과자를 파는 우리와 달리 일본에서는 지역 특산물을 재료로 기차역마다 개성 있는 도시락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삿포로는 대게를, 하코다테는 오징어를 이용한 에키벤을 팔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지역마다 특색 있는 에키벤을 맛보기 위해 여행을 다니는 사람도 있고, 전국 경연대회도 있다니 새삼 별것 아닌 것으로 넘길 수 있는 것에도 그 나름의 색깔을 담는 집요함에는 감탄하게 된다.
일본을 많이 다녀보지는 않았지만, 갈 때마다 작은 가게에서 자극을 받았다. 동네 음식점에서 청소도구점, 목공용품점, 그릇가게까지 저마다 자기의 기술과 장기를 바탕으로 손님에게 정성 들여 만든 물건을 파는 장인들의 모습. 이런 모습을 접하며 직장인의 삶에 대한 질문을 떠올려보게 된다.
첫째, 내가 가진 재료(재능)는 무엇일까. 작년 교토에 갔을 때에는 육수 만드는 기술만으로 가게를 운영하는 장인을 본 적이 있었다. 또 어떤 장인은 청소도구만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직장이라는 조직에서 만들어 놓은 부서와 직책에 맞추어 오래 생활하다 보면 정작 내가 가진 재료가 무엇인지에 대해 답변을 못하거나, 심지어 궁금해하지도 않는 나를 바라보게 된다.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음식을 책임지는 셰프와 서비스를 책임지는 지배인이 있다. 두 사람이 가진 재료는 다르다. 고객들과 잘 지내는 것에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교성은 떨어져도 요리처럼 무엇인가를 깊이 있게 파고드는 사람이 있다. 음식도 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린 것이 최고의 음식인 것처럼 직장도 자신이 가진 재능을 살릴 수 있을 때 자기만의 최고의 직업을 만들어갈 수 있다.
둘째, 내가 가진 재료를 직장생활에서 어떻게 발전시키고 적용해 나가고 있을까. 지금의 직장은 나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인가. 직장에서 자신의 재능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부서나 직장 등으로 옮길 기회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를 개인 취미의 차원에서라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평소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직장에서 딱딱한 보고서 외에는 글 쓸 기회가 없다면 수많은 채널을 활용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다. 몇 번 쓰다가 사람들이 보러 오지 않는다고 그만둘 정도라면 그만큼의 재능이나 열정이 부족한 게 아닐까 자문해볼 필요도 있다.
마지막은 ‘나의 재능으로 무언가를 판매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세상에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자신이 한 요리로 장사할 수 있는 사람은 훨씬 제한적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만 원고 청탁을 받고, 마감에 맞추어 글을 써서 원고료를 받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퇴사를 고민하면서도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가진 기술과 재능으로 조직을 떠나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답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사실 그 결과가 어떨지는 실제 해보기 전까지는 알기 힘들다.
이러한 세 가지 질문에 대한 고민과 작은 실험들은 직장에 다니는 동안 해봐야 한다. 직장을 떠날 때가 되어 고민과 실험을 시작한다면 이미 늦는다. 얼마 전 보도에서 국내 대기업 중 한 곳에서는 50세가 넘은 직원을 ‘천연기념물’로 부른다는 씁쓸한 소식이 있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9월 직장인 78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법적 정년 60세와는 상관없이 체감 은퇴연령을 50세로 본다는 결과도 나왔다. 위의 질문에 대한 고민과 준비, 실험과 시도는 늦어도 40대에는 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재능을 살리는 사람은 독립할 경우뿐 아니라 직장생활을 오래할 가능성도 높다는 점이다. 연휴가 끝나고 이제 올해도 두 달여 남았다. 불편한 질문을 더는 피하거나 미루지 말자.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