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은폐를 하지 않으면서도 은폐 효과를 달성하는 스토리가 있다. 우리나라의 ‘심청전’은 그런 스토리 중 하나다. 이것도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를 제물로 삼은 야만적 의식을 배경으로 한다.
인당수는 풍랑이 유독 심하고 물길이 험하여 항해가 어려운 바다다. ‘바다의 용들이 싸우는 것처럼’ 폭풍우가 일고 바닷물이 빙빙 도는 곳이다. 선원들은 바다를 달래려고 배를 멈추고, 쌀밥을 짓고 소와 돼지를 잡아서 제사를 지낸다. 심지어 인간까지 제물로 바친다. 제물로 바쳐지는 인간은 ‘몸에 흠결이 하나도 없고 효성과 정절을 갖춘 십오 세나 십육 세 먹은 처녀’여야 한다. 선원들에게는 그런 제물이 필요하고, 열다섯 살이 된 심청에게는 아버지가 눈을 뜨는 데 필요한 백미 삼백 석이 필요하다. 그렇게 심청은 팔려서 제물이 된다.
죽은 심청이 어떻게, 살아나서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가. 마찬가지로, 죽은 히아신스가 어떻게 히아신스 꽃이 될 수 있는가. 판타지다. 그러나 제물이 된 젊은이들이 꽃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판타지면 어떤가. 견딜 수 없는 상처와 기억은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 것들이 가능하게 되는 스토리를 통해, 치유까지는 아니어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견딜 만한 것이 된다. 인간의 삶에 신화가 필요한 이유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