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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최영훈]박근혜의 대망

입력 | 2017-10-18 03:00:00


“정치 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한다”고 16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터뜨린 폭탄선언의 여진(餘震)이 만만찮다. 박 전 대통령은 소설 ‘대망(大望)’을 읽고 있다고 했다. 일본 전국시대의 세 영웅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권력투쟁과 흥망성쇠를 그린 소설이다. 박 전 대통령의 작심 발언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2007년 대통령선거 한나라당 경선에서 패한 뒤에도 이 책을 읽었다. 소설을 쓴 야마오카 소하치는 일본 3대 역사소설가로 통한다. 1950년 3월부터 1967년 4월까지 도쿄신문 등에 연재한 뒤 문고판 26권으로 나왔다. 200자 원고지 3만4800장에 달한다. 국내에선 1970년 12권 전집으로 출판된 바 있다. 고(故) 박정희 대통령도 생전에 탐독했다.


▷야마오카는 제2차 세계대전 종군작가로서 특공대원들을 취재했다. 전화(戰火)에 휩싸인 일본의 존립과 부흥을 기원하며 도쿠가와가 구현한 ‘태평성대’에 빗대 글을 썼을 것이다. 등장인물 심리 묘사에도 탁월했다. ‘오다가 떡을 치고, 도요토미가 떡을 빚으면, 도쿠가와가 그 떡을 먹는다’는 천하통일 줄거리나 두견새를 울리는 비유를 통해 ‘죽여 버려라’(오다), ‘울게 해라’(도요토미), ‘기다려라’(도쿠가와)는 세 영웅의 성격 묘사까지 무릎을 치게 한다.

▷늘씬하게 큰 키에 잘생긴 오다는 통치의 비결은 ‘힘’이라고 여겼다. 피를 나눈 형제나 중신들도 두려움으로 떨게 만들었다. 공포정치를 즐긴 것이다. 결국 측근의 반역으로 죽음을 맞는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오다의 눈에 들어 최고 권력을 거머쥔 도요토미는 흙수저 출신, 반면 도쿠가와는 한없이 괴로움을 참는 인고(忍苦)의 시간을 보낸 뒤 265년간 지속된 에도시대를 열었다. 그는 인생을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에 비유했다. 향후 재판은 재판부에 맡긴다면서도 “더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포기하지 않겠다”는 박 전 대통령은 누구를 모델로 여기며 영어(囹圄)의 시련을 견디고 있을까.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