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정치부 기자
참기 힘든 소음 때문에 복도로 나온 필자는 대피훈련에 참가했다. 하지만 비상계단 입구부터 난감한 상황이 연출됐다. 이미 계단은 사람들로 가득해 내려가지도, 올라가지도 못하고 꽉 막혀 있었다.
오후 2시 5분. 북한의 장사정포가 오후 2시에 발사됐다면 이미 서울 도심에 도착했을 법한 시간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 어색하게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지하 1층에 다다랐을 때는 4분이 더 지난 오후 2시 9분이었다. 공습경보가 울린 뒤 5분 이내에 건물 지하로 대피해야 하는데 생존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친 셈이다. 한 직원은 “이러다가는 다 죽겠다”며 웃기도 했다.
민방공 대피훈련은 1972년 1월 처음 실시됐다. “국민 여러분, 여기는 민방위 훈련본부입니다. 지금 경계경보를 발령합니다. 앵∼” 하는 방송 내용은 요즘 중장년층에게는 익숙한 멘트다. 하지만 최근 이런 훈련 상황이 낯설어졌다. 훈련 횟수가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만 해도 대피훈련은 매달 실시됐다. 하지만 국제정세 변화, 남북 긴장관계 완화 등으로 1989년 연 9회, 1992년 연 3회로 축소됐다가 2011년 이후로 연 1, 2회 실시하고 있다. 올해엔 두 달 전 대피훈련이 유일하다. 연말 추가 계획은 없다고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는 밝혔다.
우리가 대피훈련에 무뎌진 사이 북한은 도발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김일성은 주석 재임 중 미사일 15발을 발사했고 김정일은 16발의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하지만 2012년 집권한 김정은은 지난 5년간 무려 85발의 미사일을 발사하며 위협 강도를 높이고 있다. 그뿐인가. 미사일 사거리는 늘어나고, 핵탄두는 소형화되고, 핵위협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이런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가 당장 대피훈련을 늘릴 수 있을까.
대화를 강조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대피훈련을 갑자기 늘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북핵 위기를 바라보는 국민의 불안감에도 온도차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민이 언론이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얻는 자료에는 한계가 있다. 정 그렇게 논란이 우려된다면 자료를 원하는 국민에게만 보내도 좋을 것이다.
황인찬 정치부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