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규 연세대 의대 외과학교실 교수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는 스승의 손목을 움켜쥐고 허준은 숨이 막힐 듯했다.’ ― 이은성, ‘소설 동의보감’》
위의 두 문장은 20대 청년 시절 분수처럼 강렬했던 내 안의 ‘순수’와 ‘열정’을 일깨워준 소설들의 장면이다. ‘천국의 열쇠’에선 콧대 높던 귀족 출신 수녀가 치셤 신부의 신앙에 대한 열성과 헌신에 감동하여 마음을 여는 순간을, ‘동의보감’에서는 차갑고 매정했던 스승이 제자의 환자에 대한 헌신과 의학에 대한 열정에 탄복하여 자신의 병든 몸을 내주는 상황을 기술한다. 당시 엄청난 감동을 받아 책을 덮고는 한참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좋은 뜻을 품고 일하는 사람들에겐 매우 흔하게 주변의 오해와 질시가 따라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혹독한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순수와 열정을 강한 인내와 투철한 신념으로 무장하여 나아가면, 드디어 ‘상대방의 변화’라는 소중한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의 씨앗’을 키울 수 있었다.
이제 의사 일을 하고 있는 나에게는 주변의 스승 및 환자들의 헌신적이고 이타적인 모습이 다시 큰 가르침이 되고 있다. 시신을 기증하신 분들의 고귀한 뜻을 새기고, 훌륭한 스승과 동료 및 후배 의사를 본받으며, 또한 진료를 위해 수술실에서 날마다 접하는 인체의 경이로움과 다채로움에 경의를 표하면서, 의사는 환자를 통해 그 직업이 완성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단테의 신곡을 읽으면 천국 가는 길이 아주 좁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어차피 들어가기 힘들다면 살아있을 때 자신과 다른 타인의 모든 것에 관용과 이해로 접근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은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라고 하지만 나에겐 그저 고맙기만 한 존재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천천히 깨달음으로 오는 잔잔한 기쁨의 여정이 기대된다.
김남규 연세대 의대 외과학교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