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존경하는 독립 운동가는?’
이렇게 묻는 설문에서 1위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뉴스가 되는 인물이 바로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이다. 그랬으니 백범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 씨(1917~96·사진 왼쪽) 목숨을 노리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게 당연한 일. 1996년 오늘(10월 23일) 버스 기사 박기서 씨(당시 47·사진 오른쪽)가 마침내 그 뜻을 이루고야 말았다.
안두희 씨 피살 소식을 전한 1996년 10월 24일자 동아일보 1면.
‘거사’를 계획하면서 박 씨가 선택한 무기는 나무 몽둥이(홍두깨)였다. 그는 시장에서 길이가 40㎝ 정도 되는 홍두깨를 사서 매직으로 ‘정의봉’이라고 쓴 다음 안 씨 집에 쳐들어가 그를 때려죽였다. 평소 백범 선생 책을 열심히 읽었다는 박 씨는 경찰에 자수한 뒤 “이 하늘 아래에서 (안 씨와) 같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안 씨가 (백범 선생 암살 배후가 누구였는지) 진실을 밝히지 않아 분개를 느껴 범행했다”고 말했다.
백범 선생 피살 소식을 보도한 동아일보 1949년 6월 27일자.
현역 군인 신분이던 안 씨가 백범 선생을 저격한 건 1949년 6월 26일. 당시 이승만 정권에서는 안 씨 단독범행이라고 발표했지만 그때부터 배후가 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안 씨는 1992년 4월 13일자 동아일보를 통해 김창룡 당시 특무대장(1920~56)의 사주를 받아 백범 선생을 암살했다고 증언했지만 이후 몇 차례 말을 바꾸면서 신빙성에 물음표가 따라 붙었다.
백범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 씨가 범행 이후 처음으로 범행 이후 입을 열었다고 보도한 동아일보 1992년 4월 13일자.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말 바꾸기에 분개한 박 씨가 안 씨 목숨을 빼앗으면서 정말 백범 선생 암살에 배후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누구였는지는 영영 역사 속에 묻히게 됐다. 물론 이미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안 씨가 끝내 진실을 밝히고 세상을 떠났을지는 알 수 없지만….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