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현 대한건설협회장
대한민국 운전자라면 대부분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아니라 한국 도로 인프라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예컨대 도로가 충분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일 수 있다는 점을 따져 봐야 한다. 실제로 한국의 국토면적과 인구를 모두 감안한 도로 연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30위에 불과하다. 반대로 평균 통근시간은 OECD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특히 최근 5년간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감소로 평균 통근시간은 2010년 58분에서 2015년에는 62분으로 더 늘어났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내년 SOC 예산을 올해보다 20.2%(4조4000억 원)나 삭감한 17조7000억 원으로 편성하고 국회에 제출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감축이다. 편성된 금액 17조7000억 원도 2004년(16조7000억 원) 이후 14년 만에 최저치다. 반면 2018년도 예산은 역대 최대 규모인 429조 원으로 편성된 슈퍼 예산이다. 그만큼 SOC 예산이 홀대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도로뿐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SOC 시설은 모두 공공재다. 특히 국민 편의 및 안전과 직결된 중요한 복지의 한 부분이다. SOC 투자를 단순히 건설사만 배불리고, 정치권의 표심을 얻기 위한 사업으로 치부하는 건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다.
이런 관점에서 정부가 SOC 예산을 대폭 감축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현재 한국은 고도 경제 성장기를 지나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골든타임에 서 있다. 하지만 세계 경제의 더딘 회복, 대북 관련 지정학적 리스크 증가 등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다.
SOC 사업은 재정지출승수와 고용승수가 높은 대표적인 경기부양책이다. 이런 이유에서 현재 미국 일본 등 많은 선진국에서 SOC 투자 확대 정책을 펼치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한국 경제 성장의 절반 이상(56.6%), 올해 2분기(4∼6월)까지 경제 성장의 50%를 건설투자가 차지했다.
내년 SOC 예산이 줄어들면 일자리 4만∼6만 개가 사라지는 동시에 경제성장률도 0.3∼0.5%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 주도의 성장’을 달성하는 데도 큰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인프라 투자가 충분하다는 시각, 인프라 투자와 복지는 상호 배치된다는 이분법적인 논리의 문제점을 직시해야 한다. 인프라 투자는 노후 시설을 개선해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며 교통 편의성, 환경 개선 등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복지의 중요한 수단이다. 동시에 미래 성장잠재력을 담보하는 수단이다. 인프라 투자가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 경제를 견인하는 든든한 버팀목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유주현 대한건설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