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판매업자 ‘매분구’
19세기 말∼20세기 초 그려진 ‘팔도미인도’의 일부. 동아일보DB
기생들을 왕실로 불러들여 연희를 자주 즐겼던 연산군은 보염서(補艶署)를 두어 왕실에서 필요한 의복과 화장품 공급을 전담하게 했다. 유희춘(1513∼1577)은 아내가 화장품을 팔아 번 돈으로 자신의 집무실을 지었다는 기록도 있다. ‘홍재전서’에는 예단과 고가의 사치품인 화장품을 마련하지 못해 혼인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며 사회문제로 지적했다.
화장에 대한 기록을 보면 사대부가의 여성들까지 화장에 높은 관심이 있었고, 수요량이 증가하며 활발하게 유통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통시대 화장품 판매업자를 ‘매분구(賣粉(구,우))’라고 불렀다. 매분구에 대한 기록은 다양한 에피소드 속에 등장한다. 고려 말 이색은 매분자(賣粉者)라는 시에서 중국에서 수입한 화장품 판매업자 앞에서 늙고 병들어 화장을 할 수 없게 된 아내를 생각하는 시를 지었다.
1488년 성종실록에는 매분구이면서 로비스트로 활약한 망오지(亡吾之)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는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면서 남의 재물을 조정의 관리들에게 뇌물로 바치고 청탁을 하다 발각돼 처벌을 받았다.
조구명(1693∼1737)은 한 남성에 대한 정절을 지킨 여인의 이야기를 단편소설로 남겼다. 아름다운 여인과 이웃집 남자의 애틋한 사랑, 실패, 상사병, 죽음 그리고 정절이 어우러진 러브스토리인데 이 이야기 속 여자 주인공의 직업이 바로 매분구였다. 그녀는 주로 연분(鉛粉·흰 가루로 된 화장품)을 판매했다.
‘동국여지비고’에 따르면 서울에는 영희전(현재 중부경찰서 앞) 동쪽 안팎에 2개씩 총 4개의 화장품 판매점인 분전(粉廛)이 운영되었다. 판매담당자는 모두 여성이었으며, 방문판매도 함께 했다. 매분구는 매장 직원과 외판원으로 구분되었거나 동일인이 두 역할을 함께 수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강문종 제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