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태양광산업 이끈 ‘화학업계 거목’
이 회장이 21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5세.
이 회장은 1942년 고 송암(松巖) 이회림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 창업주는 개성에서 태어나 상인들에게 일을 배운 뒤 스스로 상회를 세워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이 창업주는 신용과 근검을 제일로 여기는 ‘마지막 개성상인’으로 불렸다. 이 회장도 부친의 영향을 받아 생전 입버릇처럼 “남에게 피해 줄 일, 욕먹을 일 하지 마라. 돈은 그 다음이다”라고 강조했다.
아내 김경자 여사(OCI 미술관 관장)와의 러브스토리도 회자된다. 어려서부터 같은 동네(서울 종로구)에서 살았던 부부는 오랜 시간 서로 알고 지내며 사랑을 키웠다. 성인이 된 뒤 김 여사는 중앙일간지 기자가 됐고 이 회장이 미국 유학길에 올라야 했을 때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결혼 전부터 집안에서 반대를 했기 때문에 이 회장은 유학 중 한동안 경제적인 도움을 받지 못했다.
이 회장은 ‘인천 인맥의 대부’로도 불렸다. 김정치 전 인천상공회의소 회장,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조양호 한진 회장 등이 이 회장과 교류한 인천 출신·지역 인사들이다. OCI의 시초가 된 소다회 공장이 바로 1968년 인천에 세워졌다. 인천에 있는 송도학원과 송암문화재단 이사장을 맡은 것도 선대 회장의 고향인 개성에 있던 학교가 6·25전쟁 당시 인천에 내려와 다시 세워졌고, 이 사정을 알게 된 이 회장이 재정난에 빠져 있던 학교 재단을 지원한 인연이 있어서다.
이 회장은 ‘기업도 시민’이라며 사회공헌에도 힘썼다. 어린 시절 개성에서 스케이트를 타던 추억 속에 1978년부터 1993년까지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을 지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는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을 맡아 노사 간 대화를 잇는 데 힘썼다. 이 과정에서 자식뻘의 기자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던 소탈한 모습은 지금도 널리 알려져 있다. 경총은 이날 애도 성명에서 “이 회장은 2009년 글로벌 경제위기 때 노사민정(勞使民政)의 대타협을 이뤄내 조기 극복하는 데 기여했다”고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 여사, 장남 이우현 OCI 사장, 차남 이우정 넥솔론 관리인, 장녀 이지현 OCI 미술관 부관장이 있다. 이복영 삼광글라스 회장과 이화영 유니드 회장은 동생이다. 빈소는 서울 세브란스병원, 영결식은 25일 오전 8시에 열린다. 02-2227-7550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