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협력회의(GCC)는 한때 회원국 간에 긴밀한 협력이 이루어지는 경제협력체제였지만 최근 카타르 단교 사태를 계기로 균열이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바레인에서 열린 제37차 GCC 정상회의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정상들. 사진 출처 사우디프레스에이전시
이세형 국제부 기자
이런 배경을 업은 하마드 빈 압둘아지즈 알카와리 전 문화장관은 오랜 기간 가장 유력한 유네스코 사무총장 후보로 여겨졌다.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의 탈퇴로 재정적, 국제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는 유네스코 주변에서는 “기구의 운영만 놓고 보면 알카와리가 사무총장이 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이달 13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사무총장 선거 결과 프랑스의 오드레 아줄레 전 문화장관이 30 대 28로 알카와리 전 장관을 눌렀다. 아랍권 국가들의 반(反)카타르 세를 집결하는 또 하나의 ‘중동전(戰)’이 됐기 때문이다. 중동 외교가에서는 카타르 단교를 주도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이집트 등이 알카와리의 당선을 막기 위해 적극 움직였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나라들이 프랑스를 지원하는 건 물론이고 자신들과 재정적, 군사적으로 관계가 밀접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에도 ‘프랑스 후보를 지지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일부 이집트 관계자는 노골적으로 “프랑스를 지지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아라비아반도 6개 왕정 산유 국가(사우디, 카타르, 쿠웨이트, UAE, 바레인, 오만)들이 1981년 결성한 GCC는 국제사회에서 가장 결속력이 강한 경제·협력 동맹체제 중 하나였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으로 발생한 1991년 걸프전을 비롯해 수많은 안보와 경제 이슈에서 GCC는 영향력을 발휘했고, 지역의 안정을 유지하는 역할을 나름대로 충실히 해 왔다.
그러나 카타르 단교 사태로 촉발된 GCC의 균열이 비(非)안보·경제 이슈인 유네스코 사무총장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며 ‘분열이 갈 데까지 갔다’와 ‘날카로운 신경전이었다’는 말들이 많다. 올 12월로 예정돼 있는 GCC 정상회의가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회의론까지 나온다.
알자지라방송은 19일 단교 사태의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는 쿠웨이트의 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만약 이번 GCC 정상회의가 제대로 열리지 않으면 GCC가 사실상 붕괴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또 이 매체는 쿠웨이트가 중동에서 새로운 리스크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는 미국을 이용해 ‘미국-GCC 정상회의’를 열어 돌파구를 찾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쿠웨이트 등이 미국까지 중재자로 활용해 카타르와 반카타르 진영의 화해를 도모하려고 한다는 뜻이다.
GCC의 균열, 나아가 붕괴는 △이슬람국가(IS) 퇴치 △쿠르드족 독립 움직임 △이란 핵합의를 둘러싼 미-이란 갈등 같은 핫이슈들이 얽히고설켜 있는 중동 정세에 또 다른 ‘빅 리스크’가 될 수 있다. 또 지금까지 국제사회가 경험해 본 중동 리스크와는 양상이 다른 ‘형제국 간 심각한 갈등’이기도 하다. 약 두 달 남은 GCC 정상회의를 둘러싼 물밑 교섭과 외교적 줄다리기에 다시 한 번 국제사회가 긴장하는 이유다. 또 한동안 비안보·경제 이슈인 유네스코 사무총장 선거가 계속 입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세형 국제부 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