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선물로 받은 강아지, 과거 안좋았던 기억 때문에 한동안 멘붕에 빠져 이제는 적응 위해 노력 중 낯설고 불편해도 때로는 미래 위해 변화 받아들여야 촛불 1년, 시민은 성숙해졌으나 정치는 여전히 대립만 난무 적폐청산 당연하지만 미래 청사진도 보여주어야
박일호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
그 후 강아지 집, 밥, 장난감 등 별별 물건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익숙한 집 안 풍경이 망가져 갔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고, 강아지가 들어온 후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졌다. 각자의 일에 바쁘고 집에 들어오면 자기 방으로만 들어가던 식구들 사이에 강아지를 중심으로 모이는 공통 공간이 생겼고, 화제도 하나 더 늘었다. 강아지 돌보는 일을 같이 해야 한다는 서로간의 의무감도 느끼는 것 같았다.
어버이날을 빙자한 자기들의 선물이었지만 그 변화가 나쁘지 않아서 필자도 받아들이기로 했고, 지금은 노력하면서 적응하고 있다. 강아지를 아주 좋아하지는 않지만, 집에 두고 나오면 걱정이 되고 가끔 데리고 산책도 나간다.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이 어디 그렇게만 될 수 있을까. 때로는 변화를 받아들여야만 하고, 때로는 변화를 만들어 내기도 해야 한다. 변화가 필요한 명분과 그 변화로 인해 펼쳐질 미래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것이 개인의 일에만 그칠까. 사회도 마찬가지고 나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29일은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 1년 되는 날이다. 많은 개인이 모여 사회와 나라를 향해 변화를 외치기 시작했던 날이다. 그것은 특정한 몇 사람을 위한 것도, 특정한 몇몇 집단의 몫을 위한 것도 아니었고 노인, 중고교생, 유모차에 어린아이를 태워 나온 주부까지 전국 1600만여 명이 모여 사회가 달라져야 한다는 민심을 보여준 일이었다. 우리 모두의 피부에 와 닿는 삶 속의 작은 변화부터 시작해서 사회와 나라가 달라지고, 아이들에게 달라진 세상을 물려주자는 다짐의 장이기도 했다. 폭력적인 정치적 행동이 아닌 문화적 축제 같은 형태로 표출되었기에 그 요구가 더 정당하고 성숙된 것으로 보였고, 정치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면 1년이 지난 지금은 어디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적폐다, 새로운 적폐다 하는 첨예한 정치적 대립만 보이고, 정치인들의 복잡한 셈법만이 난무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던 변화는 아니었는데, 변화는 고사하고 도로 그 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루가 다르게 신문을 뒤덮는 끔찍한 사건들이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들고, 자국의 이익만 앞세우는 주변국들의 정치적 계산과 안보 상황도 불안해 보이는 현실을 두고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런 불안함과 긴장감으로부터 안정된 마음을 이루게 해주는 일임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는 일보다 정치가 훨씬 더 중요한 이유는 국민 대다수와 함께하는 공통 공간과 공통 화제와 공통의 의무감을 나누어 갖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쌓인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자는 데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청사진도 함께 제시되고 공유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보이지 않으니 국민이 불안해하고 피로감을 느낀다. 올바른 방향인지 새로운 적폐인지에 대해 정치가 답해 주어야 할 때인 것 같다.